퓨어 담마(Pure Dhamma)

붓다의 진정한 가르침을 회복하기 위한 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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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평화를 닙바나에 - 핵심 단계


원문: Living Dhamma 섹션의 ‘Peace of Mind to Nibbana - The Key Step’ 포스트

2016년 8월 12일, 2016년 12월 21일 개정


이 포스트의 제목을 ‘Niramisa Sukha to Nibbana Suva – The Key Step’에서 바꾸었습니다.


닙바나(Nibbana)로 가는 성스런 길을 시작하기 전에 ‘마음의 평화(Niramisa sukha, 쿨링 다운)’을 경험해야 합니다. 소따빤나(Sotapanna, 수다원) 단계로 전환은 니라미사 수카(niramisa sukha)를 경험하면서 아닛짜(anicca) 특성을 이해할 때 일어납니다.


  • * 그 전환 후, 니라미사 수카(niramisa sukha)는 빤짜 니와라나(panca nivarana, 5가지 장애)의 제거로 영구적이 됩니다. 자세한 설명은 더 많은 포스트를 필요로 하겠지만 여기서부터 시작하겠습니다.

  • * 많은 사람들은 무엇을 명상해야 하는지를 모른 채 명상하기 시작합니다. 순수한 붓다 담마의 기본을 먼저 배워야 합니다. 거기 있는(알려져 있는)  평범한 명상 테크닉으로 시작할 수 있지만, 심오한 담마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다사 아꾸살라(dasa akusala, 10가지 불선행)으로부터 가능하면 더 많이 멀어져 진심으로 시작해야 합니다.


1. 이전 포스트 ‘리빙 담마 - 소개’에서 X님의 경험에 대해 논의했습니다. 이 포스트를 보기 전에 그것을 먼저 보시기 바랍니다.


  • * X님은 정기적인 ‘아나리야 메따 바와나(anariya metta bhavana, 세간적 자애 명상)’에 참여하여 ‘니라미사 수카(niramisa sukha)’를 경험했습니다. 편안하고 차분한 마음상태로 이어졌음에도, X님은 동시에 어떤 유형의 감각적인 즐거움(책을 읽거나 음악을 듣는 것)에 관여하려는 욕망이 사라졌다는 것을 인식하였습니다.

  • * 그 다음, X님은 2주 동안 명상을 멈추었고, 책이나 음악을 즐기는 능력이 되살아 났습니다. 그러나, 니라미사 수카(niramisa sukha)도 사라졌고, X님의 마음은 다시 부담스럽고 동요되었습니다.

  • * 어떤 사람들은 그런 일시적인 쿨링 다운(cooling down) 또는 니라미사 수카(niramisa sukha)를 경험하지 못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필자는 전문 용어인 낄레사(kilesa)에 대해 논의하기 전에 이것에 대해 좀 더 논의해 볼 생각을 했습니다. 다음 단계로 가려고 하기 전에 자신의 현재 상태를 알아내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것은 단계별 과정입니다.

  • * 아닛짜(anicca) 특성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니라미사 수카(niramisa sukha)와 감각적 즐거움 사이의 차이를 경험하기 위해 그 단계(X님이 있었던 곳)에 도달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 단계에서, 빤짜 니와라나(panca nivarana)가 일시적으로 걷혀지고 마음은 아닛짜(anicca) 본질(특성)을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고요해집니다. 그러나 그것은 법문을 듣는 중에도 잠시 일어날 수 있습니다.


2. 감각적 즐거움에 완전히 빠져 있으면, 필연적으로 수반되는 정신적 부담은 그 사람에게 뚜렷이 드러나지 않습니다. 우리는 ‘배후에 있는 정신적 동요’에 익숙해져 있으므로 대부분 그것을 느끼지 못합니다. 어떤 식으로 어떻게든 ‘마음이 평온한 상태’에 들어갈 때만 비로소, 배후에 있는 이 ‘거듭되는 동요 또는 끊임없는 고통’의 짐(부담)을 인식하기 시작할 수 있습니다.


  • * 명상 프로그램을 통해 X님은 빤짜 니와라나(panca nivarana, 5장애)로 인한 이 ‘끊임없는 고통’이라는 결과로부터 벗어남을 맛보기 시작했으며, 이 벗어남을 니라미사 수카(niramisa sukha)라고 합니다.

  • * 그러나, 난제는 아닛짜(anicca) 특성(본질)을 이해하지 못하면 ‘치러야 할 대가’가 있다는 것입니다! X님에게 낙담(실망)스럽게도, 좋아하는 감각적 즐거움을 누릴(즐길) 수 있는 능력이 사라져 버렸습니다.


3. 아주 간단히 말하면, 이 문제(난제)는 X님이 아닛짜(anicca) 특성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발생합니다(이 새로운 섹션에서 우리가 하려고 하는 것은 아닛짜 특성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는 ‘단계별 과정’을 논의하는 것입니다).


  • * X님의 생각으로는, 그 감각적 즐거움은 매달릴(의지할) 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느낌은 매우 강렬합니다. 필자는 비록 얼마간의 감각적 즐거움에 대한 갈망을 잃었지만, 여전히 (갈망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 그래서, 필자는 옛날 식으로 돌아갈 필요가 있다는 ‘잔소리 느낌’을 없애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압니다.

  • * (X님과의) 유일한 차이점은 필자가 잃어버린 욕망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 ‘잃어버린 갈망’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잔소리 느낌’이나 충동은 없습니다.


4. 그래서 X님의 단계에서 아닛짜(anicca) 특성을 이해하는 것이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사람이 어느 정도까지 아닛짜(anicca) 특성을 이해하게 되면, 그 사람은 그 감각적 즐거움의 일부로 돌아가고자 하는 ‘잔소리 느낌’을 잃게 됩니다.


  • * 주어진 감각적 즐거움의 위험(또는 적어도 무가치함)을 진정으로 깨달아야만 비로소 그 감각적 즐거움을 자동적으로 포기하게 됩니다. 예를 들어, 사냥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그 활동의 나쁜 결과를 보기 시작할 때까지는 자발적으로 포기하지 않을 것입니다. 낚시, 알코올 중독자 또는 마약 사용자 등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 * 아닛짜(anicca) 본질(특성)에 대한 이해는 점차적으로 옵니다. 사람은 먼저 부도덕한 감각적 즐거움의 위험을 봅니다. 그러면 다른 사람에게 해로운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 해로운 ‘극단적인 감각적 즐거움’의 무가치함을 보게 됩니다. 사람은 오직 아나가미(Anagami) 단계에서만 ‘까마 로까(kama loka, 욕계)의 어떠한 감각적 즐거움도 무가치하다’는 것을 봅니다. 이것이 단계별 과정인 이유입니다.


5. 그것은 매우 귀중하다고 여겨졌던 [가짜] 금목걸이를 붙들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그 목걸이가 모조품이였다는 것이 의심할 여지없이 입증되었다면, 즉각 그 목걸이에 대한 들러붙음(애착)을 잃게 될 것입니다.


  • * 아닛짜(anicca) 특성(본질)을 어느 정도 이해함으로써 소따빤나(Sotapanna, 수다원) 단계에 이르는 것은 그와 같습니다. 즉, 일부 ‘극단적인 감각적 즐거움’의 위험함(및/또는 무가치함)을 깨닫는 것과 같습니다. 비록 그 단계의 사람이 일부 감각적 매력(끌림)에 대한 갈망을 잃었다는 것을 알아 차리지 못할지라도, 몇 주 또는 몇 달 안에 그것을 인식하게 될 것입니다.

  • * 그 다음에, 그 사람이 아닛짜(anicca) 특성에 대해 명상을 하면 할수록 다른(덜 해로운) 감각적 즐거움의 위험함도 더 많이 보기 시작합니다. 그것이 바로 단계별로 (명상을) 진행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모든 까마 라가(kama raga, 신체 접촉과 냄새와 맛을 통한 감각 입력에 들러붙음)를 제거하는 것은 아나가미(Anagami) 단계에서만 일어납니다.


6. 그러나, ‘X님이 책을 읽고 음악을 듣고 싶은 욕구를 잃었다’는 점에서 좀 특이한 것이라고 필자는 말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것들은 정말로 ‘극단적인 감각적 즐거움’이 아닙니다. 그 전[역자 삽입글 : 책을 읽고 음악을 듣고 싶은 욕구를 잃기 전]에 사람들은 낚시를 하거나 동물을 학대하는 등의 욕구를 잃고, 또한 거짓말, 잡담, 중상모략, 절도, 성적 부정행위 등으로 즐거움을 얻으려는 욕구를 잃을 것입니다. 어쨌든 X님은 결코 그런 [역자 삽입글: 극단적 행을 하는] 경향은 없었던 것으로 필자는 확신합니다.


  • * 필자는 또한, 사람들이 소따빤나(Sotapanna, 수다원)가 되거나 니라미사 수카(niramisa suhka)를 경험하기 위해서는 ‘책을 읽거나 음악을 듣는 것과 같은 감각적 즐거움을 잃을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갖는 것을 바라지 않습니다. 그것[역자 삽입글 : 그런 생각을 가지는 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사람은 소따빤나(Sotapanna, 수다원)일지라도 그 두가지 성향[역자 삽입글 : 책을 읽거나 음악을 듣기를 원하는 성향]을 여전히 가질 수 있습니다. 붓다 재세시에  수다원이 되었지만 술마시고자 하는 충동을 버릴 수 없었던 사람(그러나 그 사람은 수다원 단계에 도달한 후, 그리 오래 살지 못했음)에 대해 필자가 언급한 적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이 수다원에 도달했는지 여부를 말할 수 없는 것은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 * 소따빤나(Sotapanna, 수다원)는 아빠야(apaya, 악처)에 재탄생하기에 적합하게 하는 그런 행위들만은 절대로 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수다원 성자는 높은 레벨의 ‘로바(lobha, 탐욕)와 도사(dosa, 성냄)와 모하(moha, 무지)’를 제거하여, ‘까마 라가(kama raga)와 빠띠가(patigha)와 아윗자(avijja)’라는 낮은 레벨로 성향이 바뀌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에 대해서는 ‘로-바, 도-사, 모-하’ 대 ‘라-가, 빠띠가, 아윗자-’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 * 필자가 믿기로는, X님은 전생, 그러나 바로 앞 전생에서, 아나리야 자나(anariya jhana, 세간 선정)를 길렀고, 현생에 그 가티(gathi)를 지니고 있다고 봅니다. X님은 자나(jhana, 선정)와 관련된 신체적 느낌들을 묘사했습니다. 이것은 X님이 책을 읽거나 음악을 듣는 것과 같은 정말 무해한 것들에 대해서도 최소한 일시적으로 들러붙음(애착)을 잃기 쉬운 이유입니다.


7. 각 사람은 소따빤나(Sotapanna, 수다원) 단계에 도달하면 한 세트의 개별적 특성(가티, gathi)를 잃게 됩니다. X님이 그랬던 것처럼, 그것들이 무엇인지 돌아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물론 그 변화들이 영구적인지 아닌지를 볼 수 있어야 합니다.


  • * 필자가 언급한 바와 같이, 필자는 30년 이상 동안 해왔던 음주 행위, 즉 퇴근시에 술마시고자 하는 충동을 잃었습니다. 필자는 그 음주습관을 계속할 때에 생길 수 있는 나쁜 결과들을 숙고하였지만, 그 음주습관을 힘을 다해 (강제하여) 그만두지는 않았습니다.

  • * 사람이 길(팔정도)을 따라갈 때, 감각적 즐거움을 억지로 포기하지 않고 오직 다른 유정체(생명체)를 해칠 수 있는 부도덕한 행동만 포기합니다. X님도 책 보기나 음악 듣기를 억지로(힘을 다해) 포기하지는 않았고 그냥 그렇게 포기되는 것입니다. 감각적 즐거움에 대한 욕구를 잃는 것은 극단적인 욕구에서부터 시작하여 점차적으로 잃게 됩니다.

  • * 필자는 픽션(소설) 책을 읽는 것에 대해서만 관심을 잃었습니다. 필자는 모든 종류의 책을 읽곤 했지만 지금은 픽션(소설)을 읽는 것에 관심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필자에게는 그것은 마치 TV(드라마 등)를 보는 것처럼 시간 낭비이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필자는 이제 더 많은 논픽션 책을 읽고 있습니다.

  • * 필자는 또한 지난 2년 동안 필자의 과학 관심사에서도 더 결실이 있었습니다. 필자는 2년 전만 해도 필자에게 명백하지 않았던 양자 역학의 미묘한 점을 배워 왔습니다. 사람이 낄레사(kilesa, 번뇌)를 제거함에 따라 마음은 훨씬 더 맑아 집니다.

  • * 따라서, 사람이 모든 관심(흥미)을 잃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깨닫는 것이 중요합니다. 탐함, 미워함, 미혹함과 관련된 활동에만 관심(흥미)을 잃습니다. 그것은 반드시 해야 할 일이고, 뒤돌아 볼 때 꽤 명백해야 합니다. 사람은 아라한과(Arahanthood)를 성취했을 때만 모든 세속적인 일에 관심을 잃습니다.


8. 요점은 사람은 먼저 X님의 단계에 들어가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입니다. 그 단계에서 명상 프로그램을 통해 감각적 즐거움에 대한 욕구를 적어도 일시적으로 억제함으로써 생기는 니라미사 수카(niramisa sukha)와 감각적 즐거움(아미사 수카, amisa sukha) 사이의 차이를 알 수 있습니다.


  • * 명상 프로그램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은 도덕적인 삶을 사는 것인데, 가능한 한 많이 다사 아꾸살라(dasa akusala, 10가지 불선행)를 멀리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9. 많은 사람들이 닙바나적 즐거움을 단지 감각적 즐거움의 면에서 생각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즉 닙바나적 즐거움을 음악과 좋은 음식 등을 즐기는 것과 같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닙바나적 즐거움을 얻으려고 합니다. 이 때문에 X님의 설명이 둘 사이의 차이를 알려 주는 데 있어서 그렇게 좋은 예입니다.


  • * 실제로 이것은 아미사(amisa), 니라미사(niramisa), 자나 수카(jhana sukha) 및 닙바닉 수바(Nibbanic suva)에서 그 차이를 논의하기에 좋은 곳(지점)입니다.

  • * 닙바나적 즐거움은 니라미사 수카(niramisa sukha)와는 차원이 다르기 때문에 닙바나(Nibbana)에 대해서는 그 이름을 ‘수바(suva)’로 지정하였습니다. 그것은 ‘웰빙’의 전체적 상태입니다. 필자는 그것이 더 높은 단계에서 무엇과 같은지는 모릅니다. 그러나 바로 지금 그것은 몸과 마음에 항상 존재하는 진정 효과(calming effect)입니다.

  • * 감각적 즐거움은 아-미사(ämisa) 또는 사-미사(sämisa) 수카로 이끕니다. 그래서 우리는 아미사 수카(amisa sukha)에 익숙합니다.


10. 니라미사 수카(niramisa sukha)는 몇 가지 다른 원인으로 인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그것들은 길(팔정도)에도 도움이 되고 아닛짜(anicca) 본질(특성)을 이해하는 데도 도움이 됩니다.


  • * 아미사 수카(amisa sukha)를 불러 일으키는 찟따(citta)들은 낄레사(kilesa, 번뇌) 또는 아꾸살라 쩨따시까(akusala cetasika)(다음 포스트에서 논의할 예정임)로 부담(짐)이 됩니다. 이것들은 끊임없이 압박에 시달리는 동요하는(불안한) 마음을 일으킵니다. 이에 대해서는 ‘끊임없는 압박 - 둑카 삿짜의 핵심’를 보세요. 이것은 X님이 앞 포스트에서 “..저는 몇 주 동안 공식(집중) 명상을 중단했고, 저는 이전처럼 동요하고 불안해지기 시작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로 설명한 것입니다. 사람이 이 끊임없는 압박을 없애면 니라미사 수카(niramisa sukha)를 느낍니다.

  • * 예를 들어, 다른 사람을 돕거나 배고픈 사람이나 동물에게 음식을 제공하는 등의 도덕적인 활동을 할 때, 사람은 또한 짧은 시간 동안 니라미사 수카(niramisa sukha)를 느낄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이러한 느낌은 그러한 활동 중에 일어나는 찟따(citta, 마음, 생각)에 낄레사(kilesa, 번뇌)가 없기 때문에 느낍니다.

  • * 다른 하나는 아리야(Ariya) 또는 아나리야(anariya) 명상을 하고 있을 때입니다. 여기에서도 사람의 마음에는 대부분 낄레사(kilesa, 번뇌)가 없습니다(사마디(samadhi)의 힘에 달려 있음).


11. 붓다께서 추천하신 높은 니라미사 수카(niramisa sukha)도 있습니다. 그것은 자나(jhana, 선정)로 인해 생기는 수카(sukha)입니다. 사람이 자나(jhana, 선정) 상태에 있을 때, 그 사람은 루빠 로까(rupa loka) 또는 아루빠 로까(arupa loka)에 속하는 마음으로 퍼지는 찟따(citta)를 지닙니다.


  • * 정의에 따르면, 그 찟따(citta)도 낄레사(kilesa, 번뇌) 또는 정신적 불순물이 없습니다.

  • * 자나(Jhana, 선정)는 사마디(samadhi)가 특정 수준으로 강화될 때(길러질 때) 생깁니다.


12. 니와나 수와(Nivana suva) 또는 닙바닉 수와(Nibbanic suva)는 열반의 행복으로서, 찟따(citta)가 훨씬 더 순수하기 때문에 생깁니다. 그 찟따(citta)에는 끊임없는 동요나 스트레스의 흔적이 남아 있지 않습니다.


  • * 또한 소따빤나(Sotapanna, 수다원)는 자나(jhana, 선정)를 길러 소따빤나 팔라 사마빳띠(Sotapanna phala samapatti, 수다원 과 본삼매)에 들어갈 수 없다면, 그 단계의 니와나 수와(Nivana suva)를 경험할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수다원 성자는 니라미사 수카(niramisa sukha)가 사라지지 않습니다. ‘끊임없는 압박’으로부터 벗어남(해방)은 영구적입니다.


13. 곧 이 시리즈에서 끊임없는 동요와 스트레스뿐만 아니라 결국 모든 윤회의 고통을 야기하는 아꾸살라 쩨따시까(akusala cetasika, 불선 마음요소)인 낄레사(kilesa, 번뇌)에 대해서도 논의할 것입니다.


  • * 끊임없는 압박은 낄레사(kilesa, 번뇌) 또는 아꾸살라 쩨따시까(akusala cetasika)로 부담(짐)이 된 찟따(citta)로 인한 ‘즉각적인 깜마 위빠까(kamma vipaka)’로 간주될 수 있습니다. 그런 찟따(citta)의 ‘지연된 결과(효과)’는 나중에 더 많은 깜마 위빠까(kamma vipaka)를 가져오고, 더 강력한 것은 아빠야(apaya, 악처)에 재탄생을 가져올 수 있습니다.

  • * 따라서 소따빤나(Sotapanna, 수다원) 단계에 이르는 핵심 스텝은 도덕적 행동(sila, 실라)과 좋은 명상 프로그램을 통해 마음을 정화함으로써 니라미사 수카(niramisa sukha)를 경험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마음은 아닛짜(anicca) 본질(특성)을  파악하는 것에 열려 있습니다. 즉, [아닛짜 본질을 파악하도록] 빤짜 니와라나(panca nivara, 5장애)는 며칠 동안 억제될 수 있습니다.

  • * 그러나 사람이 도덕적 삶을 살고 순수한 담마를 숙고할 때, 그 전환은 빠르게 일어날 수 있으며, 그 때 그 전환을 알아 차리지 못하더라도 소따빤나 팔라(Sotapanna phala, 수다원 과) 순간까지 이어질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다른 방식으로 수다원과에 이릅니다.

  • * 그러나 소따빤나(Sotapanna, 수다원) 단계를 논의하기 전에 논의할 부분이 많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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