퓨어 담마(Pure Dhamma)

붓다의 진정한 가르침을 회복하기 위한 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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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스런 팔정도 - 소바나 쩨따시까의 역할


원문 : Living Dhamma 섹션의 ‘Noble Eightfold Path – Role of Sobhana Cetasika’ 포스트

2016년 9월 30일, 2017년 12월 5일 개정(#5)


1. 이 섹션의 이전 글에서, 니라미사 수카(niramisa sukha, 마음의 평화)가 어떻게 아소바나 쩨따시까(asobhana cetasika, 아름답지 않은 정신 요소) 또는 낄레사(kilesa, 오염물)를 제거하고 소바나 쩨따시까(sobhana cetasika, 아름다운 정신 요소)를 육성함에 따라 일어나는지를 논의했습니다.


  • * 이 포스트에서 필자는 성스런 팔정도의 8요소 중 7가지가 소바나 쩨따시까(sobhana cetasika_의 세트에 있음을 짚어 보겠습니다.


2. 여기까지 이 시리즈의 포스트에서 이해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사실은 우리 마음은 아소바나 쩨따시까(asobhana cetasika), 즉 낄레사(kilesa, 오염물)가 나타나면 열오름/동요(흥분, 불안)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 * 반면에, 우리 마음에 ‘소바나 쩨따시까(sobhana cetasika)’가 나타나면 진정되고 편안하게 되며 만족감을 줍니다.  

  • * 사람은 이 사실을 이해하고 실제로 아소바나 쩨따시까(asobhana cetasika)를 억제/제거하면서 소바나 쩨따시까(sobhana cetasika)를 기르는 실천을 할 때까지 이것을 깨닫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3. 이 사이트의 다른 곳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찟따(citta)와 쩨따시까(cetasika)에 대해 체계적으로 분석한 아비담마(Abhidhamma)는 붓다께서 빠리닙바나(Parinibbana, 반열반)에 드신 후 3차 상가-야나-(Sangāyanā, 결집 모임)까지 몇 백년 동안 완료되지 않았습니다. 3차 결집에서 완성된 아비담마를 포함한 삼장은 기원전 1세기(기원전 29년)에 스리랑카에서 필사된 것을 남기는 것으로 알루위하라 사원에서 개최된 4차 결집시에 결정(약속)되었습니다. 이 4차 결집은 아라한들이 참석한 마지막 상가-야나-(Sangāyanā)였습니다.


  • * 그 후에 곧  마하야나(Mahayana, 대승)가 동시적으로 일어남과 함께 순수한 붓다 담마가 쇠퇴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Historical Background’ 섹션의 포스트를 보세요.

  • * 붓다고사(Buddhaghosa) 스님이 띠삐따까(Tipitaka, 삼장)를 요약한 것으로 추정된 위숫디막가(Visuddhimagga, 청정도론)을 저술하자, 테라와다불자들도 편의상 삼장을 보지(참조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 * 그래서, 아무도 쩨따시까(cetasika)의 가능한 중요한 사용법을 깨닫지 못한 것 같습니다. 첫째, 낄레사(kilesa, 오염물)는 아소바나 쩨따시까(asobhana cetasika, 아름답지 않은 정신 요소)와 같습니다. 둘째, 성스런 팔정도의 요소는 소바나 쩨따시까(sobhana cetasika)의 세트에 있습니다. 이를 통해 체계적으로 길(팔정도)을 따라갈 수 있는 방법을 쉽게 이해할 수 있으며, 그것이 이 포스트의 초점입니다.

  • * 자세한 내용은 앞으로 있을 데사나(desana, 음성 법문)에서 논의하겠지만, 그 논의에 사용될 수 있는 요약을 여기서 제공하고자 합니다. 이들 데사나에서 사용될 또 다른 그런 요약 포스트는 이전 포스트 중의 하나인 “ '낄레사(정신적 오염물)'란 무엇인가? -  쩨따시까에 연결” 에 제시된 요약입니다.


4. 지난 데사나(desana)부터 계속하여 시작하겠습니다. 거기서 우리는 감각하는 일에 대한 반응으로 첫 생각이 어떻게 의식조차 하지 않고 일어나는지를 논의했습니다. 이러한 첫 생각은 우리가 지니고 있는 소바나(sobhana)/아소바나(asobhana) 쩨따시까(cetasika) 또는 가티(gathi)의 세트 때문에 자동적으로 일어납니다. 모든 아꾸살라(akusala) 생각은 아소바나 쩨따시까(asobhana cetasika)와 같은 낄레사(kilesa) 때문에 일어납니다.


  • * 그러나, 말과 신체 행동은 그 첫 생각이 올라오는 것보다 훨씬 느리기 때문에, 우리는 자동적으로 일어나는 그런 반응적인 아꾸살라(akusala) 생각을 계속 경계하여 반응을 역으로 뒤집을 수 있습니다.

  • * 이것이 ‘사띠빳타-나(Satipattāna)’와  ‘아-나-빠-나사띠 바-와나-(Ānāpānasati bhāvanā)’의 기초입니다. ‘가티와 낄레사가 어떻게 생각에 포함되는가?’ 포스트에 있는 이전 데사나(법문 - 두 개로 나누어져 있음)를 듣고 이 중요한 개념을 완전히 이해해 보세요. 여기, 데사나(법문)  두 개를 링크합니다.


법문 첫째 부분:

https://drive.google.com/file/d/0B8ZQck7L0xjdaGFsQzc4Rk5JZjQ/view

법문 둘째 부분(더 중요한 내용이며, 볼륨이 낮으므로 컴퓨터에서 볼륨을 높일 필요가 있을 수 있음):

https://drive.google.com/file/d/0B8ZQck7L0xjdcUk0bVFnb3JIREk/view


  • * 우리는 또한 그러한 가티(gathi)가 어떤 주어진 사람과 연관되어 있다는 증거를 논의했고, 그것들이 어디에 저장되어 있는지의 문제를 다루었습니다.


5. 우리는 또한 위 데사나(법문)에서, 감각하는 일에 반응하여 일어나는 그 첫 생각을 마노- 상카-라(manō sankhāra)라고 한다는 것을 보았습니다. 따라서 마노- 상카-라(manō sankhāra)를 의식적으로 통제할 수는 없으며, 그것은 가티(gathi)(소바나/아소바나 쩨따시까의 세트)로 인해 아주 짧은 시간 안에 일어납니다.


  • * 2017년 12월 5일: 그런 아꾸살라 마노- 상카-라(akusala manō sankhāra)는 그 다음, 와찌 상카-라(vaci sankhāra)(머릿속의 침묵의 말과 밖으로 하는 말)와 까-야 상카-라(kāya sankhāra)(신체 행위)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이 설명은 위 데사나(법문)에 있는 것과는 다르며, 이 개정된 부분의 이유는 ‘와찌 상카라의 바른 의미’ 포스트에서 논의했습니다.

  • * 그러나 우리가 사띠(sati, 마음챙김)를 유지하면, 그런 ‘아꾸살라 마노- 상카-라(akusala manō sankhāra)’를 포착하여 그것이 ‘아꾸살라 와찌 및 까-야 상카-라’로 이어지지 않게 할 수 있습니다.

  • * 팔정도에서, 그런 의도적으로 생성된 와찌 상카-라(vaci sankhāra)를 삼마 상깝빠(samma sankappa) 또는 삼마 상칼빠(samma sankalpa)라고 합니다.

  • 그리고, 그 삼마 상깝빠(samma sankappa)는 삼마 사띠(samma sati)로 행했기 때문에 생겨났습니다.


6. 위의 데사나(desana)에서 분실된 반지를 본 사람 X의 예를 논의했습니다. X가 강한 탐욕스러운 가티(gathi, 성향, 습관)를 가졌다면, 첫 생각(manō sankhāra, 마노- 상카-라)은 그 반지를 자신 소유로 하는 것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X가 마음챙김(sati, 사띠)하는 것에 대해 안다면, 머리에서 와찌 상카-라(vaci sankhāra)로 상황을 평가하고 반지를 자신 소유로 하는 것이 부도덕하다는 결론을 내릴 시간을 가집니다.


  • * X가 올바른 결정을 내렸다면, 그것에 대해 생각하는 것 후에도 물건을 훔치는 아꾸살라 깜마(akusala kamma)를 막을 수 있습니다. 그 뿐만 아니라, X는 그 반지를 정당한 소유주에게 돌려 주는 것을 확실히 함으로써 꾸살라 깜마(kusala kamma)를 행할 수 있습니다.

  • * 그래서, 이제 우리는 삼마 사띠(samma sati)와 삼마 상깝빠(samma sankappa)의 중요한 역할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동물과는 달리 초기의 반응적 결정에 대해 합리적(이성적)으로 생각하고 그것이 부도덕하다면 그 결정을 역으로 뒤집을 수 있는 기회를 가집니다.


7. X가 삼마 사띠(samma sati)로 행했고 첫 반응의 문제를 깨달았고 삼마 상깝빠(samma sankappa)로 올바른 결정을 내린 경우, 그는 그 결정을 구현하기 위해 삼마 와짜(samma vaca, 바른 말)와 삼마 까만따(samma kammanta, 바른 행위)로 다음 단계를 밟을 수 있습니다. 그는 카운터(계산대)로 가서, 반지를 넘겨주고, 사무실 직원에게 반지를 주인에게 돌려달라고 할 수 있습니다.


  • * 이것은 가능한 한 가지 예일 뿐입니다. 우리는 하루에 그러한 많은 경우를 접하게 됩니다. 또 다른 예로, 사람이 붐비는 곳에서 누군가 실수로 발을 밟은 것에 언짢아질 수도 있고, 그 결과를 생각하지 않고 그 사람에게 소리 지르기 시작할 수도 있습니다. 특히, 그 경우는 거의 낯선 사람일 것이기 때문에, 그 사람은 분명히 의도적으로 그렇게 하지는 않았습니다.

  • * 말을 꺼내기 시작했다 하더라도, 자신을 빨리 멈추고 그 사람에게 미소 지으며 큰 문제가 아님을 나타낼 수 있습니다. 그것은 그 사람이 안심할 수 있게 해줄 것입니다. 왜냐하면 아마 그 사람은 그것에 대해 기분이 좋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 * 이런 간단한 친절 행위는 서로를 차분하게 할 것입니다. 상대방은 안도감을 느끼고 친절에 감사할 것입니다. 게다가 그것은 아귀다툼으로 확대될 수 있었고 서로에게 ‘열나는(화나는) 마음’을 불러 올 수도 있었습니다.


8. 그런 마음챙김 행위의 이득을 알 때, 그런 행을 더 많이 하기 시작할 것이며, 도덕적 삶을 살기 시작할 것입니다. 이것이 삼마 아지와(samma ajiva, 도덕적인 생계 생활)입니다.


  • * 그 뿐만 아니라, 사람은 마음챙기는 추가적인 노력을 기울일 것이고, 그런 아꾸살라 깜마(akusala kamma)로 이끌 수 있는 어떤 반응적인 생각을 잡을 수 있을 것입니다. 이것이 삼마 와야마(samma vayama, 도덕적인 노력)입니다.

  • * 몇 주가 지나면, 이것은 깊이 밴 ‘가티(gathi)’를 바꾸기 시작할 것입니다. 그 아소바나 쩨따시까(asobhana cetasika)를 사용하는 것을 멈추면, 그것들의 힘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감소할 것입니다. 그와 동시에, 소바나 쩨따시까(sobhana cetasika), 즉 삼마 사띠(samma sati), 삼마 상깝빠(samma sankappa), 삼마 와짜(samma vaca), 삼마 까만따(samma kammanta), 삼마 아지와(samma ajiva), 삼마 와야마(samma vayama)를 기르고 있습니다. 따라서 나쁜 가티(gathi)는 줄어들고 좋은 가티(gathi)는 자랄 것입니다.


9. 자, X는 반지를 자신 소유로 하기로 한 그 첫 결정(마노- 상카-라, manō sankhāra)의 나쁜 결과에 대해 이성적(합리적)으로 생각할 수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어느 정도 삼마 딧티(samma ditthi, 도덕적 견해)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마음속 깊이 그는 그런 ‘주지 않는 것을 취하는 행위(도둑질 행위)’가 부도덕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그 반지를 취하는 경향을 물리칠 수 있었습니다.


  • * 삼마 딧티(Samma ditthi)는 대략 ‘지혜’로 번역되는 빤냐(panna)라는 소바나 쩨따시까(sobhana cetasika)와 관련이 있습니다. 이 ‘지혜’는 책을 읽는 것으로 길러질 수 없으며, 단지 담마 관련 책을 읽는 것만으로도 길러질 수 없습니다. 빤냐 쩨따시까(panna cetasika)는 담마(Dhamma)를 배우고 그것에 따라 살아감에 의해(즉, 팔정도를 따라 실천함에 의해) 길러지고, 그 결과로 모하(moha)를 제거합니다.


10. 이제, 팔정도(여기에서는 세간 버젼)에 있는 다른 요소와 소바나 쩨따시까(sobhana cetasika)의 일부 사이의 관련성을 살펴 보겠습니다.


  • * 먼저, 팔정도에 있는 3개의 요소인 ‘삼마 와짜(samma vaca)’, 삼마 까만따(samma kammanta) 및 삼마 아지와(samma ajiva)는 소바나 쩨따시까(sobhana cetasika)의 목록에 있는 것과 똑같은 이름을 갖습니다.  ‘Cetasika (Mental Factors)’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11. 삼마 상깔빠(Samma sankalpa)는 감각 입력으로 인해 일어나는 ‘아꾸살라 마노- 상카-라(akusala manō sankhāra)가 있더라도 우리가 의도적으로 생성하는 와찌 상카-라(vaci sankhāra)입니다. 와찌 상카-라(vaci sankhāra)는 숫따(sutta)에서 위딱까(vitakka)와 위짜라(vicara)로 설명됩니다. 위딱까(vitakka)는 생각 대상 쪽으로 마음을 향하게 하고, 위짜라(vicara)는 그 생각 대상 주위에 마음을 유지하게 합니다.


  • * 자-나(jhāna, 선정)에 익숙한 사람들은 위딱까(vitakka)와 위짜라(vicara)가 아나리야 자-나(anariya jhāna, 세간 선정)에서 두 가지 자-나(jhāna) 요인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첫 번째 아나리야 자-나(anariya jhāna)에서는, 예를 들어 마음을 까시나 대상(kasina object)으로 향하게 하여(vitakka, 위딱까), 거기에 마음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vicara, 위짜라). 아리야 자-나(Ariya jhāna)에서는 닙바-나(Nibbāna)에 초점을 두고 있기 때문에 사위딱까(savitakka) 및 사위짜라(savicara)라고 합니다.

  • * 그래서 삼마 상깔빠(samma sankalpa)를 유지하는 것은 ‘도덕적인’ 위딱까(vitakka) 및 위짜라(vicara) 또는 꾸살라 와찌 상카-라(kusala vaci sankhāra)를 생성하는 것과 같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들은 말로 밖으로 표현된 것이 아니라 머릿속에서 생성된다는 것을 잊지 마세요. 그것들은 싱할라어에서 ‘상깔빠나(sankalpana)’라고 합니다.

  • * 또한, 위딱까(vitakka)와 위짜라(vicara)도 부도덕한 길에서 사용될 수 있다는 것에 주목하세요. 강도질를 계획하는 도둑 두목은 그 일에 집중하고 계획을 생각하는데 많은 시간을 할애할 것입니다. 그래서, 그 두 쩨따시까(cetasika)는 빠낀나까(pakinnaka)라는 범주에 속합니다. 그것들은 필요에 따라 꾸살라(kusala) 또는 아꾸살라(akusala) 생각(마음)에 나타날 수 있습니다.


12. 자, 삼마 와야마(samma vayama)는 이러한 빠낀나까(parkinnaka) 중 다른 하나인 위리야 쩨따시까(viriya cetasika)에서 일어납니다.


  • * 사람이 도덕적인 삶을 살려고 노력할 때 삼마 와야마(samma vayama)를 만들고 있고, 그 도둑 두목처럼 부도덕한 삶을 향하여 노력한다면 그는 밋짜 와야마(micca vayama)를 만들고 있습니다.

  • * 물론 소바나 쩨따시까(sobhana cetasika)인 사띠 쩨따시까(sati cetasika)는 삼마 사띠(samma sati)입니다.


13. 이제, 삼마 사마디(samma samadhi)가 남아 있습니다. 이것은 쩨따시까(cetasika)와 직접 관련이 없는 유일한 요소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마디(samadhi)가 자-나(jhāna) 혹은 적어도 정식 명상에서만 달성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마디는 훨씬 더 깊습니다. 다음 데나사(desana)에서 이 포스트에서 요약된 것을 함축하여 함께 사마디(samadhi)에 대해 논의할 것입니다.


  • * 우리는 붓다 담마(Buddha Dhamma)의 토대를 이해하고 강화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는 아소바나 쩨따시까(kilesa, 낄레사)를 없앰에 의해 마음에서 타-빠(thaapa, 열기)를 제거하고, 이와 동시에 소바나 쩨따시까(sobhana cetasika)를 육성함에 의해 마음을 식혀서 기쁨을 가져올 수 있는 방법을 통한 노력입니다.


이것은 이 시리즈의 다음 첫 데사나(desana)에서 언급되었습니다.


법문 : 우리 모두가 이해할 수 있는 숨겨진 고통

https://drive.google.com/open?id=0B8ZQck7L0xjdbjdWVV8tbjQ0U28


  • * 더 자세한 내용은 다음 두 개의 데사나(desana, 법문)에서 들을 수 있습니다.


법문: 이 삶의 괴로움 - 정신적 오염물의 역할

https://drive.google.com/file/d/0B8ZQck7L0xjdODF6a1RQZUJpa1k/view

법문: 사띠빳타-나 숫따 - 이 삶의 괴로움과의 연관성

https://drive.google.com/file/d/0B8ZQck7L0xjdVzhBSllLMXZTZ0E/view


14. 위 데사나(desana)에서 논의된 것처럼, 아소바나 쩨따시까(asobhana cetasika)와 함께 일어나는 아꾸살라(akusala) 생각은 우리 마음을 흐리게 만들고 어둠속에 있게 합니다. 모하(moha)는 어둠입니다. 그것은 로바(lobha)와 도사(dosa)로 이어집니다. 그 어둠은 담마(Dhamma)를 듣거나 읽는 동안 일시적으로 걷힐 수 있습니다(tandanga pahana, 따당가 빠하나).


  • * 다음 단계는 마음챙김을 통해 며칠 몇주 동안 빛(지혜)를 유지하고, 오랜 시간 동안 아꾸살라 깜마(akusala kamma)로 이끄는 아꾸살라(akusala) 생각을 멈추는 것입니다. 이것은 윅캄바나 빠하나(vikkhambana pahana)이며, 우리가 지금 달성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마음챙김(sati), 즉 삼마 사띠(samma sati)와 함께 행해집니다.

  • * 궁극적인 목표는 그 아소바나 쩨따시까(asobhana cetasika)를 영구적으로 제거하여, 미래의 삶에서도 그 쿨링 다운(cooling down)이 영구적이게(우쩨다 빠하나, ucceda pahana)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것에 대해 추후 포스트들에서 알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충분한 토대를 확립하고, 먼저 장기간 동안 니라미사 수카(niramisa sukha를 실제로 경험할 필요가 있습니다(윅캄바나 빠하나(vikkhambana pahana)).


15. 어둠을 없애기 위해서는 빛이 들어와야 합니다. 빛은 소바나 쩨따시까(sobhana cetasika)인 빤냐(panna, 지혜)입니다. 성스런 팔정도는 삼마 사마디(samma samadhi)를 통해 빤냐(panna) 쩨따시까(cetasika)를 최적화하고 모하 쩨따시까(moha cetasika)를 없애도록 고안되었습니다.


  • * 까루나(karuna)와 무디따/무두따(mudita/muduta)와 같은 다른 소바나 쩨따시까(sobhana cetasika)도 이 과정을 도와 줍니디.

  • * 결국 퍼즐의 다른 조각(빠띳짜 사뭅빠다, paticca samuppada 포함)이 어떻게 모두 함께 어우려져 전체 과정을 ‘쉽게 볼 수 있는 그림’을 만드는지를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그것은 띨락카나(Tilakkhana, 삼법인)를 보다 쉽게 파악할 수 있게 하고,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게 합니다.

  • * 이 모든 것들은 실라(sila), 사마디(samadhi), 빤냐(panna)의 체계와 일치함을 보여줄 수 있습니다. 쩨따나 까라니야 숫따(Cetana Karaneeya Sutta)에서 붓다께서는 실라(sila, 도덕적 행위)가 어떻게 니라미사 수카(niramisa sukha)로 이어지고, 니라미사 수카(niramisa sukha)는 사마디(samadhi)로 이어지며, 사마디(samadhi)는 빤냐(panna)로 이어지는 지를 상세히 보여 주셨습니다. 이 모든 것들을 앞으로의 데사나(desana)에서 논의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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