퓨어 담마(Pure Dhamma)
붓다의 참된 가르침을 회복하기 위한 탐구
깜마와 빠띳짜 사뭅빠-다 ㅡ 소개
원문: Dhamma and Science 섹션의 ‘Kamma and Paṭicca Samuppāda – Introduction’ 포스트
- 2020년 3월 27일 작성
붓다 담마(불교)의 독특함
깜마(kamma)와 빠띳짜 사뭅빠-다(Paṭicca Samuppāda)는 밀접한 관련이 있으며 상 카-라(saṅkhāra)가 그 사이를 연결하는 다리 역할을 합니다. 상카-라(saṅkhāra)의 역할은 다음 포스트에서 알아보겠습니다.
1. 많은 동양 종교(불교, 힌두교, 자이나교, 시크교)는 깜마(kamma)와 재탄생을 믿습니다. 그렇다면, 불교는 [다른 동양 종교와]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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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브라함 계열의 종교는 재탄생을 믿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들도 영원한 행복 상태에 이르는 길은 도덕적인 삶을 사는 것이라고 가르칩니다. 그것은 좋은 깜마(kamma)를 짓고 나쁜 깜마(kamma)를 짓는 것을 피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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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면에, 불교를 제외한 모든 종교는 천상 세계에서 영원히 행복하게 사는 것에 기반을 두고 있습니다. 붓다 담마(Buddha Dhamma)에서는 천상의 영역에서 감각적 즐거움을 누리는 것을 약속(추구)하지 않습니다. 감각적 즐거움에 들러붙는 것은 미래의 고통으로 이어지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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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데, 불교는 종교가 아닙니다. 불교는 완전히 자기 일관성(self-consistent)이 있는 세계관입니다. 그 세계관을 이해하면, 고통(괴로움)의 문제에 대한 영구적 인 해결책을 볼(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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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가지 성스런 진리(사성제)를 이해하려면, 먼저 고통(괴로움)은 재탄생 과정에 있다는 것을 이해해야 합니다. 그 이해는 동시에 세가지 진리, 즉 (i) 미래 고통(괴로움)의 원인, (ii) 그 원인은 제거될 수 있다는 것, (iii) 고통(괴로움)이 일어나는 것을 멈추는 길을 더 드러낼 것입니다. 그러므로, 붓다께서 세상에 드러내신 “이전에 알려지지 않은 고통(괴로움)”을 먼저 이해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2. 불교(붓다 담마)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i) 이 세상에는 고통(괴로움)이 영구적으로 없는 존재는 없습니다. 고통(괴로움)이 거의 없는 높은 영역의 존재가 있지만, 그들도 또한 수명이 한정되어 있습니다.
(ii) 선한 행위를 하고 도덕적인 삶을 살아도 전생의 깜마(kamma) 때문에 미래에 나쁘게(악처 등에) 태어날 수 있습니다.
(iii) 반면에, 이 생에서 부도덕하게 살았다하더라도 이 생에 열반을 얻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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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세 가지 점이 명확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다음 몇 개의 포스트(게시물)에서 이들 문제를 다루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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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들 문제(의문)에 대한 답변은 또한 다음을 명확히 할 것입니다. 붓다께서는 ‘자아(self)’가 존재하는지 아닌지에 대해 주장하는 것이 좋은 출발점이 아니라고 가르치셨습니다. 그 대신, 우리는 미래의 태어남(그래서 미래의 고통)이 어떻게 일어나는지를 조사하는 것으로 시작할 필요가 있습니다. 과학에서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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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학과 같이, 붓다 담마(Buddha Dhamma)는 인과관계의 원리를 기반으로 합니다. 원인 없이는 어떤 일도 일어날 수 없습니다. 하지만, 모든 원인이 필연적으로(반드시) 그 결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도 이해해야 할 중요한 점입니다.
원인과 조건이 미래 태어남을 가져온다
3. 만약 모든 원인이 결과로 이어진다면 업은 결정론적 결과로 이어질 것입니다. 예를 들어, 일부 종교에서는 부도덕한 행위가 그 결과로 이어질 것이라고 가르칩니다. 그래서 그들은 기존의 나쁜 깜마(kamma)을 제거하는 길(방법)을 찾으려고 노력합니다. 붓다께서도 붓다가 되기 위해 힘쓰면서 6년 동안 노력하셨던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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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깨달음을 이룬 밤에, 붓다께서는 올바른 조건이 있어야만 원인이 효과(결과)를 가져올 수 있음을 발견하셨습니다. 그것이 원인과 조건의 원리인 빠띳짜 사뭅빠-다(Paṭicca Samuppāda)입니다. 그러나 그 조건이 무엇인지 이해해야 합니다. 이것이 빠띳짜 사뭅빠-다(Paṭicca Samuppāda)가 심오한 개념인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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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데, 빠띳자 사뭅빠-다(Paṭicca Samuppāda)는 [영어로] ‘patichcha samuppaada’라고 발음됩니다. 빠알리(Pāli) 낱말이 쓰여지는 방식은 표준 영어와 다릅니다. 이에 대해서는, ‘Tipiṭaka English” Convention Adopted by Early European Scholars – Part 1’ 및 ‘Tipiṭaka English” Convention Adopted by Early European Scholars – Part 2’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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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빠띳짜 사뭅빠-다(Paṭicca Samuppāda)는 적절한 조건에서 원인이 어떻게 결과로 이어지는지를 설명합니다. 그러므로, 과거의 깜마(kamma)을 제거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는 그 나쁜 깜마(bad kamma)가 위빠-까(vipāka)를 가져오는 조건이 없어지도록 우리 마음을 정화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해서, 거의 천명을 죽인 앙굴리말-라(Angulimāla)가 아라한뜨후드(Arahanthood, 아라한과)를 얻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아래를 참조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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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원인과 조건의 원리는 매우 중요한 점이므로 씨앗의 비유와 함께 좀 더 논의해 보겠습니다.
조건이 필요한 것의 예
4. 사과 씨앗은 사과 나무가 생명을 가지게 하는 잠재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사과 나무는] 그 씨앗에 원인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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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흙을 준비하고 물을 공급하고 거기에 씨앗을 심는 계획을 한다고 가정해 보겠습니다. 햇빛도 또한 쬐일 수 있다면, 사과 씨앗이 싹트고 사과 나무가 자랄 것입니다. 그것들은 그 사과 씨앗이 싹을 틔우고 사과 나무로 자라서 크게 되는데 필요한 조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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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나, 사과 씨앗을 서늘하고 건조한 곳에 보관하면 싹이 트지 않습니다. 즉, 그 경우에는 사과 나무로 살아 나기 위한 필요한 조건이 없습니다. 오랜 시간이 지나면, 그 씨앗은 쓸모없는 씨앗으로 변하여, 결코 나무로 자랄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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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더욱이, 사과 씨앗을 심으면, 그 결과는 망고 나무가 될 수 없고 사과 나무가 될 뿐입니다. 결과(vipāka, 위빠-까)는 원인(‘깜마_kamma’ 또는 더 구체적으로 ‘깜마비-자_kamma bīja’)에 따릅니다.
띠삐따까(삼장)에 있는 예 ㅡ 앙굴리말-라 이야기
5. 이와 같은 식으로, 아라한과를 얻은 사람은 현생에서도 매우 부도덕한 행위를 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사람은 그런 행위가 결과로 열매맺을 수 있는 조건들을 제거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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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앙굴리말-라(Angulimāla) 이야기는 이 점을 나타내는(설명하는) 좋은 예입니다. 그는 거의 천명을 죽였습니다. 따라서 그는 아빠-야-(apāyā)에 많은 횟수에 걸쳐 태어나기에 충분한 ‘나쁜 깜마(kamma)’를 지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몇 주 만에 아라한과(Arahanthood, 아라한뜨후드)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앙굴리말라 이야기 - 붓다 담마에 대한 많은 통찰’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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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쁜 깜마(kamma)’를 지으면, 깜마 비-자(kamma bīja, 업 씨앗)가 만들어집니다. 적절한 조건 하에서, 씨앗이 식물로 자랄 수 있는 것처럼, 그 업 씨앗은 싹이 트서 새로운 태어남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우리는 그런 업 씨앗이 어떻게 각자의 강력한 생각(javana citta, 자와나 찟따)에 의해 만들어지는지 논의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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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나, 식물 씨앗의 경우와는 달리, 강력한 깜마(kamma)조차도 아라한에게는 재탄생되게 하는 위빠-까(vipāka)를 가져올 수 없습니다. 앙굴리말-라(Angulimāla)의 경우, 거의 천명을 죽이는 강한 나쁜 깜마(kamma)는 그가 빠리닙바-나(Parinibbāna, 반열반)를 얻은 것과 같은 생에서 이루어졌습니다. 그가 죽을 때, 그 업의 에너지가 거기에 있었지만 그의 마음 성향은 그것을 움켜잡지 않았습니다. 즉, 연기(PS)의 ‘우빠-다-나 빳짜야- 바와(upādāna paccayā bhava)’단계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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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론, 그 마지막 요점은 앞으로 있을 포스트에서 자세히 논의할 필요가 있습니다.
6. 더욱이 그 결과(발현되는 경우)는 업(kamma)과 양립합니다. 그것은 사과 씨앗으로 인해 생기는 사과 나무와 유사합니다. 아꾸살라 깜마(akusala kamma, 부도덕한 행위)는 아빠-야-(apāyā, 악처 또는 사악처)에 태어남으로 이어질 뿐입니다. 그것은 인간 영역이나 더 높은 영역에 태어남으로 이어지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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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와 유사하게, 꾸살라 깜마(도덕적인 행위)는 아빠-야-(apāyā)에 태어남으로 이어지지 않습니다. 그것은 선처(good realm)에 태어남으로 이어질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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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장 중요한 것은 원인이 있더라도 필요한 조건이 충족되지 않으면 해당 결과(vipāka, 위빠-까)가 실현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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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모두는 전생에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꾸살라 깜마(kusala kamma)와 아꾸살라 깜마(akusala kamma)를 지었습니다. 우리는 좋은 깜마(kamma)가 그 위빠-까(vipāka)를 가져 오고 나쁜 깜마(kamma)가 그 위빠-까(vipāka)를 가져 오지 않는 조건을 만드는 것에 마음을 둘 필요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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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서, 왜 원인과 조건 모두가 우리의 일상 생활과 재탄생 과정에서 역할을 하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자아’와 ‘무아’는 오도하는 개념이다
7. 아라한은 재탄생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로부터 ‘자아(self)’라는 개념에 대한 통찰력을 얻을 수 있습니다. 영구적인 ‘자아’가 있다면, 아라한이 빠리닙바-나(Parinibbāna)를 얻고 재탄생 과정을 끝내는 것은 불가능할 것입니다. 그것은 ‘영혼(soul)’이나 ‘아트만(Atman)’ 또는 ‘아-뜨마(ātma)’와 같은 영원한 자아(self)는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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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지만, 그 아라한은 과거 셀 수 없는 시간동안 31영역의 대부분에 태어났을 것입니다. 예를 들어, 인간으로 사는 동안,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자아(self)’가 있었습니다. 그 사람은 자신의 결정을 내리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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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아라한은 동물로 태어났을 때, 동물의 마음 성향(사고 방식)을 가졌을 것입니다. 데와(Deva) 영역에 태어 났을 때, 그 데와(Deva, 천신)는 오랫동안 감각적 즐거움을 누렸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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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므로, 사는 동안 ‘자아가 없다’고 하는 생각도 또한 이치에 맞지 않습니다. 삶을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결정을 내리는 ‘자아(self)’가 분명히 있습니다. 야생 동물까지도 다음 끼니를 어떻게 할 것인지 결정해야 합니다.
8. 우리는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습니다. 이 생을 사는 동안 우리가 있다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습니다. 반면에 ‘자아(self)’라는 개념은 일시적인 것입니다. 그 ‘자아(self)’’는 일생 동안에도 계속 변하지만 ‘새로운 바와(bhava)’를 움켜잡을 때 급격하게 변할 것이다. 따라서, ‘영원한 자아’를 말하는 것도 옳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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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아감(sense of a self)’은 아라한 단계에서만 완전히 사라집니다. 그때까지 우리는 이 세상의 어떤 것을 ‘내 것’으로 취하는 것이 왜 결실이 없는지(헛된 것인지)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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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것은 자신이 소유한 모든 것을 나눠주기 시작해야 한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우리는 이행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나아가, 마음 성향(mindset, 사고 방식)이 변함에 따라 ‘주기(giving)’와 ‘놓아버리기(letting go)’는 자동적으로 일어납니다. 필자는 개인적으로 그것을 경험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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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또 다른 중요한 점은 ‘큰 그림’을 갖는 것이 많은 문제를 명확히 하는데 도움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모순적으로 들릴지 모르지만, 사실입니다. ‘The Framework of Buddha Dhamma’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31영역이라는 더 큰 그림
9. 많은 이전 포스트(게시물)에서 논의했듯이, 우리 세계는 제한된 우리 감각으로 경험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더 복잡합니다. 현재 논의에 관련된 몇 가지 핵심 사항을 요약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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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세계의 31영역은 세 가지 유형의 로-까(lōka, 세계)에 속합니다. ‘까-마 로-까(kāma lōka)’에는 인간 영역을 포함하여 11가지 영역이 있습니다. 루-빠-와짜라 브라흐마-(rūpāvacara Brahmā, 색계 범천)가 살고 있는 ‘루-빠 로-까(rūpa lōka)’에는 16가지 영역이 있습니다. 그 다음, 아루-빠-와짜라 브라흐마-(arūpāvacara Brahmā, 무색계 범천)가 살고 있는 ‘아루-빠 로-까(arūpa lōka)’에는 4가지 영역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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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높은 곳에 있는 그 두 로-카(색계와 무색계)가 가장 단순(간단)합니다. 그 20가지 영역에는 선정의 즐거움(jhānic pleasure)만 있습니다. 인간은 자-나(jhāna, 선정)를 길러 그 모든 영역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하위 4가지 자-나(jhāna, 선정)는 16가지 루-빠-와짜라 브라흐마(rūpāvacara Brahma, 색계 범천) 영역의 선정(jhānic) 경험에 해당합니다. 상위 4가지 자-나(jhāna, 선정)는 4가지 아루-빠-와짜라 브라흐마(arūpāvacara Brahma, 무색계 범천) 영역의 선정(jhānic) 경험에 해당합니다. 그 모든 브라흐마(Brahma)들은 우리와 같은 ‘조밀한 몸’이 없습니다. 그들의 ‘몸’은 물질이 정말 거의 없습니다. 그들은 간답바-(gandhabbā)보다도 훨씬 더 ‘보기’가 어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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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머지 11가지 영역은 까-마 로-까(kāma lōka)에 있습니다. 먹기, 냄새 맡기, 신체 접촉과 관련된 감각적 즐거움은 11가지 영역에서만 가능합니다. 11가지 영역에 있는 유정체는 비교적 ‘조밀한 고형의 몸(까라자 까-야, karaja kāya)’을 지니고 있습니다. 까-마 로-까(kāma lōka)에는 복잡하고 다양한 형태의 ‘몸’이 있습니다. 우리는 동물 영역내에서도 매우 높은 복잡함을 볼 수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6가지 영역의 데와-(devā, 천신)는 우리보다 훨씬 가볍지만 브라흐마(Brahma)보다 밀도가 높은 ‘몸’을 지니고 있습니다.
무엇이 다른 영역에 재탄생으로 이어지는가?
이 물음에 대한 답은 깜마(kamma)와 빠띳짜 사뭅빠-다(Paṭicca Samuppāda)는 밀접한 관련이 있고 거기에 상카-라(saṅkhāra)가 핵심 역할을 한다는 것에 있습니다.
10. 사람이 상위 20가지 영역 중에 태어나려면, 자-나(jhāna)를 길러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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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떤 종류의 자-나(jhāna)를 길러 그 상위 20가지 영역에 태어나기 위해 붓다 담마(Buddha Dhamma)를 따를 필요는 없습니다. 아나-리야(세간) 명상 기법(호흡 및 까시나 명상)은 그런 ‘아나-리야 자-나(anāriya jhāna)를 기르는데 사용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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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나, 브라흐마(Brahma, 범천) 영역에 그렇게 태어나는 것은 그곳에 살 동안만 지속됩니다. 그 후, 그 브라흐마(Brahma, 범천)가 죽는 순간에 마음에 떠오르는 가장 강한 깜마 위빠-까(kamma vipāka)를 바탕으로 까-마 로-까(kāma lōka, 욕계)에 다시 태어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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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까-마 로-까(kāma lōka, 욕계)의 다양한 영역에 재탄생하는 것은 훨씬 더 복잡합니다. 그것에 대해서는 다음 포스트(게시물)에서 논의하겠습니다. 그곳에서 상카-라(saṅkhāra)의 역할이 논의될 것입니다.
요약
11. 우리는 이전에 붓다 담마(Buddha Dhamma)의 기본 원리를 보는 다른 방식에 대해 논의하였습니다. 예를 들어, ‘The Framework of Buddha Dhamma’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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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의 내용은 또 다른 방식을 간략히 요약한 것입니다. 우리는 다음 포스트에서 깜마(kamma)와 빠띳짜 사뭅빠-다(Paṭicca Samuppāda) 사이의 연결 관계를 계속 탐구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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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로 다른 시각에서 기본 틀을 파악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서서히 더 심오한 면으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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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작없는 재탄생 과정에 대한 개념을 얻으려면 다른 각도에서 ‘더 큰 그림’을 검토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세상은 복잡하고, 그것을 이해하는 것은 마치 큰 조각 그림 퍼즐을 맞추는 것과 같습니다. 정말 노력이 필요하지만, 견인력을 얻으면 즐거워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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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단 본질적인 측면을 이해하기 시작하면, 붓다와, 그 담마(가르침)와, 이 심오한 담마를 이해하고 2500여년에 걸쳐 충실하게 전승한 상가의 귀중함(가치)을 보게 될 것입니다. 그것이 진정한 믿음(삿다-, saddh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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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시리즈의 모든 이전 포스트는 ‘생명의 기원(Origin of Life)’ 서브 섹션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