퓨어 담마(Pure Dhamma)

붓다의 진정한 가르침을 회복하기 위한 탐구


{"google":["PT Serif","Noto Sans KR"],"custom":["Nanum Gothic","Nanum Barun Gothic"]}

 

압빠마-도- 아마따 빠당....

 

원문: Dhammapada 섹션의 ‘Appamadö Amata Padam....’ 포스트

- 2019년 2월 13일 개정; 2020년 5월 21일 개정

 

압빠마-도- 아마따 빠당(appamādō amata padam)

빠마-도- 맛쭈노- 빠당(pamādō maccunō padam)

압빠맛따- 나 미-얀티(appamattā na meeyanthi)

예 빠맛따- 야타- 마따-(ye pamattā yathā matā).

(담마빠다 게송 21, 사마와띠 왓투_Samavati Vatthu)

 

  • * 압빠마-다(appamāda)는 ‘미루지 않고(지체없이) 행함’이고, 빠마-다(pamāda)는 ‘미룸(지체함)’입니다.

  • * 마따(mata) (‘matha’로 발음)는 ‘죽음’입니다. 그리고 아마따(amata)는 ‘죽음 없음(죽지 않음)’으로, 닙바-나(Nibbāna, 열반)을 나타내는 또 다른 낱말입니다. 맛쭈노-(maccunō) (‘machchunō’로 발음)도 ‘죽음’이며, 미-얀티(meeyanthi)도 마찬가지입니다.

  • * 빠다(pada)는 ‘낱말/말’을 의미합니다(이 낱말들의 대부분은 또한 싱할라 낱말입니다).

  • * 압빠맛따-(appamattā)는 미루지(지체하지) 않는 자이고, 빠맛따-(pamattā)는 미루는(지체하는) 자입니다.

  • * 야타-(yathā)는 ‘진짜 지위/처지(상태)’입니다.

 

이제 우리는 게송의 의미를 다음과 같이 얻어낼 수 있습니다.

 

미루지(지체하지) 않고 서두르는 것은 ‘죽음이 없다는 말(죽지 않는다는 말)’이다.

미룸(지체함)은 ‘죽음이라는 말(죽는다는 말, 사형 선고)’이다.

미루지(지체하지) 않고 서두르는 자는 ‘죽음 없음의 지위(상태)’를 얻는다.

미루는(지체하는/태만한) 자는 이미 죽은 것과 같다.

 

1. 그러므로 (붓다 담마를 모르거나 단지 ‘길_팔정도’을 따라가는 것을 미루는 것으로 인해) 닙바-나(Nibbāna, 열반)를 구하는 데 지체하는 사람은 살아 있는 동안에도 죽은 사람과 같습니다. 그 사람은 미래에 무수한 죽음에 직면하게 될 것입니다.

 

  • * 그러나 노력하여 열반을 얻는 사람은 이미 ‘죽음 없는(죽지 않는) 상태에 도달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닙바-나((Nibbāna, 열반)를 얻은 후에는 미래의 모든 죽음이 멈추기 때문입니다. 더 이상 미래의 재탄생이 없고, 따라서 더 이상 죽음이 없습니다.

  • * 8부류의 성자(앗타 뿌리사 뿍갈라, attha purisa puggala) 중의 한 부류가 되었을 때, 사실상 ‘죽음 없음(죽지 않음) 상태’에 도달합니다. 이는 일단 아리야(Ariya, 성자)가 되면, 그것을 결코 잃지 않고 아빠-야(apāya, 악처/사악처)에도 결코 태어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자신이 소-따빤나 아누가-미(Sōtapanna Anugāmi)가 될 때, 아리야(Ariya, 성자)로 ‘태어났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소따-빤나 아누가-미 - 더 이상 사악처에 태어나지 않음’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2. 긴급한/절박한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1. 1) 죽을 때를 예측할 수 없습니다. 젊고 건강한 사람도 사고나 기타 예측할 수 없는 원인으로 죽을 수 있습니다.

  2. 2)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우리 두뇌는 퇴화되기 시작하고, 따라서 우리 마음은 담마(Dhamma)를 파악(이해)할 수 없게 됩니다.

 

3. 필자가 아는 많은 불자(불교도)들은 ‘젊을 때 인생을 즐기고’ 은퇴 후 한참 지난 노년에 닙바-나(Nibbāna, 열반)에 집중하기 시작하고 싶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노년에 이르지 못할(못하고 죽을) 수도 있고, 설령 노년에 이르더라도 마음은 부처님의 깊은 메시지를 파악(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 * 대부분의 사람들은 실천을 미루는 결론에 이르게 되는데, 왜냐하면 그들은 닙바-나(Nibbāna, 열반) (또는 소-타빤나 단계)에 도달하는 것이 언제든지 행해질 수 있는 몇 가지 의식을 따르는 단순한 행위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큰 실수(잘못)일 것입니다. 소-따빤나(Sōtapanna) 단계는 이 세상의 진정한 본질(특성)인 아닛짜(anicca), 둑카(dukkha), 아낫따(anatta)를 이해함으로써 도달되는 것이며, 그것은 예리한 마음과 많은 숙고를 필요로 합니다.

 

4. 붓다께서는 한때 빅쿠들과 함께 [전법] 여행하던 중에 늙은 거지 부부를 보았습니다. 붓다께서는 빅쿠들에게 그 남자의 이름은 마하-다나(Mahādana)(부자라는 뜻)이고 그는 실로 매우 부유한 사람이었고 여자는 그의 아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은 둘 다 ‘띠헤-뚜까(tihétuka) 탄생’이었습니다. 즉, 그들은 전생에 (탐욕 없음, 미움 없음, 지혜라는 3가지 좋은 뿌리로 행해진) 매우 강한 선업으로 인해 태어났습니다.

 

  • * 붓다께서는, 그래서 그들이 아주 어렸을 때 [팔정도의] 길을 가기 시작했다면, 그 남자는 아라한(Arahant)이 되고 그 여자는 아나-가-미(Anāgāmi)가 될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이 젊었을 때(20대)에 [길을 가기] 시작했다면, 아나-가-미(Anāgāmi)/사까다-가-미(Sakadāgāmi)가 될 수 있었을 것이고, 중년에 [길을 가기] 시작했다면, 사까다-가-미(Sakadāgāmi)/소-따빤나(Sōtapanna) 단계를 달성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지만] 그 대신에, 그들은 매우 호화로운(사치스러운) 생활을 하였고, 그들의 재산을 낭비하였고, 거지가 되었습니다. 이제 그들은 너무 늙어서 아무 것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 *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팔정도의] 실천을 ‘노년’으로 미루는 것은 불행한(유감스러운) 일입니다. 일찍 시작해서, 최소한 느린 속도라도 실천을 계속하는 것이 좋습니다.

  • * 열반을 성취하는 능력의 요인으로 네 가지가 있는데, 아-유(āyu, 나이), 완나(vaṇṇa, 활기참/적극적임), 수카(sukha, 편안함/안락함), 발라(bala, 자질/역량)입니다. 이것들은 과거의 뿐냐 깜마(puñña kamma, 공덕행)로 인한 것입니다. ‘깐하(어두운)와 숙까(밝은) 깜마와 깜막카야’ 포스트의 #13을 참조하세요.

  • * 어떤 사람들은 아주 나이가 들어도 충분한 완나(vaṇṇa, 활기참/적극적임)와 발라(bala, 자질/역량)를 가질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보통 사람이 특정 노인을 보고 “이 사람은 열반을 얻기에는 너무 늙어 보인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어떤 사람이 담마(Dhamma)를 이해하기에 너무 늙었는지 여부는 오직 부처님만이 정확히 알아내실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나이가 들수록 뇌는 약해집니다.

 

여기에 이 게송을 [와하라까] 테로 존자님께서 암송(낭송)하신 것을 녹음한 파일이 있습니다.

다운로드

 

[역자 주:  https://youtu.be/ZN8jkAV9VQA 의 첫부분에서는 Ven. Kiribathgoda Gnanananda Thero 님의 암송(낭송)을 들을 수 있음]

{"google":["PT Serif"],"custom":["Nanum Gothic","Noto Sans KR"]}{"google":["PT Serif","PT Sans"],"custom":["Nanum Gothic","Noto Sans KR","Nanum Barun Gothic"]}
{"google":["Noto Sans KR"],"custom":["Nanum Gothi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