퓨어 담마(Pure Dhamma)

붓다의 진정한 가르침을 회복하기 위한 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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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윈냐-나(의식)은 다양한 유형과 형태가 있을 수 있다

 

원문: Abhidhamma 섹션의 ‘2. Viññāṇa (Consciousness) can be of Many Different Types and Forms’ 포스트

 

1-1. 윈냐-나(viññāṇa)는 유정체(중생)에게 특유합니다. 식물은 살아 있지만 윈냐-나(viññāṇa)가 없습니다. 식물은 환경에 반응하지만 ‘생각’할 수는 없습니다. 유정체(중생)는 자신이 살아 있음을 알고 있으며, 단지 ‘살아 있다’는 그 기본적인 인식은 실제로는 윈냐-나(viññāṇa)가 아닙니다.

 

  • * 윈냐-나(viññāṇa)의 이 가장 순수한 레벨(‘살아 있다’는 인식)을 ‘찟따(citta, ‘chiththa’로 발음) 단계라고 합니다.

  • * 찟따(citta)는 7가지 수반되는 ‘정신 요소(cetasika, ‘chetasika’로 발음)와 함께 일어나며, 이것은 ‘찟따와 쩨따시까 ㅡ 윈냐-나가 일어나는 방법’에 설명되어 있습니다. 강조하자면, 순수한 찟따(citta)는 그 공통 쩨따시까(cetasika)와 함께 일어나는데, 찟따(citta)에는 항상 그 7가지 쩨따시까(cetasika)가 있습니다.

 

그러나, 유정체(중생)의 찟따(citta)는 일어나자마자 다른 쩨따시까(cetasika)에 의해 오염됩니다. 찟따(citta)의 수명(10억분의 1초 보다 작음) 내에, 마음은 점진적으로 ‘좋은 쩨따시까(good cetasika)’ 또는 ‘나쁜 쩨따시까(bad cetasika)’에 의해 오염되며, 이것은 9단계로 일어납니다! 이것은 이전 포스트인 ‘1. 생각(찟따), 의식(윈냐-나), 및 마음(하다야 왓투) ㅡ 소개’에서 논의되었습니다.

 

1-2. ‘찟따와 쩨따시까 ㅡ 윈냐-나가 일어나는 방법’에서 논의된 바와 같이, 찟따(citta)에 ‘색깔’을 입히는 것은 그 추가적인 쩨따시까(cetasika)들입니다. ‘좋은 쩨따시까(good cetasika)’의 세트가 찟따(citta)와 함께 일어나면 그것은 좋은 생각(good thought), 즉 ‘좋은 윈냐-나(good viññāṇa)’가 됩니다. ‘나쁜 쩨따시까(bad cetasika)’의 세트라면, 그 생각(thought), 즉 ‘윈냐-나(viññāṇa)’는 나쁘게 됩니다(그 쩨따시까들은 섞이지 않습니다). 또한, 좋지도 않고 나쁘지지 않은 중립적인 생각(neutral thought), 즉 ‘중립적인 윈냐-나(neutral viññāṇa)’가 있습니다.

 

  • * 윈냐-나(viññāṇa)는 다양한 방식으로 경험될 수 있습니다. 각각의 경우에 다른 이름을 생각해내기가(떠올리기가) 어렵기 때문에 그것들을 모두 윈냐-나(viññāṇa)로 함께 묶어 말합니다. 짝쿠 윈냐-나(cakkhu viññāṇa), 소따 윈냐-나(sota viññāṇa) 등과 위빠-까 윈냐-나(vipāka viññāṇa) 뿐만 아니라 찟따(citta), 윈냐-나(viññāṇa), 마노(mano)와 같은 낱말은 다른 맥락에서 사용되고 있으며, 그것은 모국어가 영어, 중국어, 또는 심지어 빠알리어에 가까운 싱할라어인지에 관계없이 많은 사람들에게 혼동/혼란을 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각 용어에는 그 고유한 ‘미묘한 정체성(의미)’이 있으며, 우리가 더 많이(자세히) 논의함에 따라 그 미묘한 차이들이 분명해질 것입니다.

 

1-3. 윈냐-나(viññāṇa)는 종종 ‘의식(consciousness)’으로 번역되지만 윈냐-나(viññāṇa)는 ‘잠재의식(subconscious)’ 또는 ‘의식(consciousness)의 층(layer)’과 같은 다양한 맥락에서 사용될 수 있습니다.

 

  • * 싱할라어를 사용하는 사람들도 같은 문제에 직면하는데, 거기서는 시타(sitha)라는 낱말이 빠알리어인 찟따(citta), 마노(mano), 및 윈냐-나(viññāṇa)를 나타내는 데 여러 번 사용되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싱할라어에서 ‘야띠 시타(yati sitha)’는 잠재의식(subconscious)을 나타내는 데 사용됩니다.

  • * (‘지그문트 프로이트’가 도입한) 영어의 ‘subconscious(잠재의식)’ 또는 싱할라어의 ‘yati sitha(야띠 시타)’는 별도의 찟따(citta)가 아닙니다(한 번에 하나의 찟따(citta)만 있을 수 있음). 그러나 각 찟따(citta)는 ‘의식(consciousness)의 층(layer)’을 가질 수 있습니다. 마나시까라 쩨따시까(manasikara cetasika)는 여기서 큰 역할을 합니다.

  • * 예를 들어, 주어진(특정) 시간에 우리는 여러 ‘잠재의식(subconscious)’ 윈냐-나(viññāṇa)를 가질 수 있습니다. 우리는 특정한 차를 살 계획, 다음 주에 여행을 떠날 준비를 할 계획, 집을 짓는 과정 등의 계획을 가질 수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은 잠재의식(subconscious)과 각 찟따(citta)에 있습니다. 도로에서 관심을 갖고 있는 차와 같은 차를 보면, 윈냐-나(viññāṇa)는 여러분에게 그것에 대해 주의를 환기시키고, 그러면 여러분은 그것(차)을 잘 살펴봅니다.

  • * 붓다께서 빅쿠들에게 충고/조언하셨듯이, 정말로 중요한 것은 그 의미를 전달하는 것입니다. 빠띳짜 사뭅빠-다(Paṭicca Samuppāda) 또는 땅하(tanha)의 경우와 같이 빠알리 낱말을 사용하고 그 의미를 이해하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그런 [빠알리] 핵심 낱말들은 그 개념을 전달하기(이해시키기) 위해 어떤 다른 언어를 사용한다면 여러 낱말 또는 문장이 필요할 수 있는 깊은 의미를 전달합니다.

 

윈냐-나의 유형은 깜마 및 감각 문과 연관된다

 

윈냐-나(viññāṇa)는 복잡하며 다양한 유형과 형태로 나타내어질 수 있습니다. 우리는 윈냐-나(viññāṇa)의 ‘두 가지 범주(카테고리)’를 살펴보는 것으로 시작할 것입니다.

 

2-1.첫째, 윈냐-나(viññāṇa)와 관련된 깜마(kamma)(또는 ‘상카-라_saṅkhāra’)에 따라 그것들을 깜마 윈냐-나(kamma viññāṇa), 위빠-까 윈냐-나(vipāka viññāṇa), 및 끼리야 윈냐-나(kiriya, kriya viññāṇa)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이 용어들이 의미하는 바를 일반(평범한) 말로 설명하겠습니다.

 

  • * 우리는 깜마(kamma, 업)과 관련하여 윈냐-나(viññāṇa)를 세 가지 범주로 나눌 수 있습니다. 깜마(상카-라)를 행하는 중에 일어나는 그 윈냐-나(viññāṇa)들을 깜마 윈냐-나(kamma viññāṇa)라고 합니다. 예를 들어, 무언가를 훔쳤을 때, 그 사람은 그것을 인식하게 됩니다. 그것은 ‘그 사람이 훔치는 윈냐-나(viññāṇa)’입니다.

  • * 그 다음, 깜마 위빠-까(kamma vipāka)로서 일어나는 것들이 있으며, 따라서 우리는 그것들에 대해서는 통제할 것이 별로 없습니다. 그것들은 단지 우리에게 일어나고 아브야까따 윈냐-나(avyakata viññāṇa) 또는 위빠-까 윈냐-나(vipāka viññāṇa)라고 불립니다. 필자는 아브야까따 윈냐-나(avyakata viññāṇa)보다 위빠-까 윈냐-나(vipāka viññāṇa)라는 용어를 [사용하기를] 좋아합니다. 왜냐하면 그 두 종류를 구별하기 쉽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길을 가다가 길가에서 귀중한 어떤 것을 볼 때, 그것은 짝쿠 윈냐-나(cakkhu viññāṇa)(무언가를 보는 것)이고 또한 깜마 위빠-까(kamma vipāka)로 인한 위빠-까 윈냐-나(vipāka viññāṇa)입니다.

  • * 이 범주의 세 번째 유형은 ‘끼리야(kiriya, kriya) 윈냐-나(viññāṇa)’라고 하며, 그것들은 깜마(kamma)과 관련이 없습니다. 우리가 업적(kammically)으로 ‘좋음’ 또는 ‘나쁨’과 관련이 없는 어떤 것을 생각하고, 말하고, 또는 행할 때, 그것은 끼리야 윈냐-나(kiriya viññāṇa)로 행해집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그 날의 집안 청소를 생각할 때, 누군가에게 지금 몇 시인지 물을 때, 또는 음료를 마시기 위해 부엌으로 걸어갈 때, 그 모든 것들은 끼리야 윈냐-나(kiriya viññāṇa)로 행해집니다.

 

2-2. 차를 타고 여행을 하면서 창밖을 내다보고 있을 때, 우리는 정말 다양한 것들을 봅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것들을 보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대부분에 전혀 주의를 기울이지 않습니다. 그것들은 위빠-까 윈냐-나(vipāka viññāṇa)이며, 그것들은 우리에게 보이지만, 그것들의 대부분은 우리의 관심을 끌지 못할 수 있습니다.

 

  • * 그러다 갑자기 우리의 관심을 불러 일으키는 어떤 것을 보게 됩니다. 예를 들어, 그것은 길가에 있는 멋진 집일 수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그것에] 주의를 집중하고 심지어 그것이 우리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계속 지켜볼 수도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에게 있는 ‘가띠(gati)’를 촉발한 위빠-까 윈냐-나(vipāka viññāṇa)입니다. 그것은 관심사였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깜마 윈냐-나(kamma viññāṇa)를 시작함으로써 더 많은 깜마(kamma)를 획득할 수 있는 위치에 그것을 놓이게 할 수 있습니다.

  • * 예를 들어, 우리가 그 집에 정말로 관심을 갖게 된다면, ‘그런 집을 짓고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하는 생각을 하기 시작할 수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그 ‘보는 것(사건)’에 기초하여 상카라(saṅkhāra)를 형성(즉, 업을 생성)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집을 보는 것’이라는 초기의 위빠-까 윈냐-나(vipāka viññāṇa)에 뒤이은 그런 생각(또는 윈냐-나)이 깜마 윈냐-나(kamma viññāṇa)입니다.

  • * 우리의 삶의 경험은 기본적으로 이 세 가지 범주 중 하나에 속합니다.

 

2-3. 그 모든 윈냐-나(viññāṇa)들은 완전히 다른 형태로도 설명(기술)될 수도 있습니다. 그것들은 이번에는 감각 문을 바탕으로 여섯 가지 범주로 구분될 수 있는데, 그러면 우리는 짝쿠 윈냐-나(cakkhu viññāṇa, 시각 의식)를 가지며, 소따(sota, 청각), 가나(ghana, 후각), 지와(jivha, 미각), 까야(kaya, 촉각), 및 마노(mano, 마음) 윈냐-나(viññāṇa, 의식)을 가지게 됩니다.

 

  • * 앞의 예에서, 세 가지 유형의 윈냐-나(viññāṇa)는 모두 짝쿠 윈냐-나(cakkhu viññāṇa), 즉 ‘보는 것(사건/의식)’으로 시작되었습니다. 깜마 윈냐-나(kamma viññāṇa) 단계에서, 집을 획득하는 것에 대한 그 생각들이 우리 마음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에 그것들은 마노 윈냐-나(mano viññāṇa)가 되었습니다.

  • * 그 다음, 다른 사람(승객)이 우리 몸에 접촉되면, 우리는 몸을 돌려 그 사람을 바라볼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제 우리에게 까야 윈냐-나(kaya viññāṇa)(이것 또한 ‘위빠-까 윈냐-나’임)가 일어났기 때문입니다.

  • * 그 [몸] 접촉이 우연히 이루어진 것으로 판명되면, 우리는 그것을 그냥 놓아 버리며, 그것은 단지 누군가를 보는 중립적인 사건(즉, ‘kiriya viññāṇa_끼리야 윈냐-나’)일 뿐입니다.

  • * 그러나, [그 사람이] 과거에 우리가 연인 관계를 맺은 사람이라면, 우리는 깜마 윈냐-나(kamma viññāṇa, 즉 mano viññāṇa)를 생성하기 시작할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와 나쁜 관계를 맺은 사람이라면, 우리는 또 다른 유형의 깜마 윈냐-나(kamma viññāṇa, 즉 mano viññāṇa)을 생성하기 시작할 수 있습니다.

  • * 따라서 이것에 대해 조금만 숙고해 보면, 우리의 모든 경험이 이 두[세] ‘분류(division)’ 중 하나에 포함될 수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즉, 우리는 그것들을 위빠-까 윈냐-나(vipāka viññāṇa), 깜마 윈냐-나(kamma viññāṇa), 및 끼리야 윈냐-나(kiriya viññāṇa) 범주 또는 감각 의식 범주에 속하는 것으로 분석할 수 있습니다.

 

2-4. 우리가 나중에 이야기할 다른 유형의 윈냐-나(viññāṇa)도 있지만, 지금은 빠띳짜 사뭅빠-다(Paṭicca Samuppāda)에 정말 중요한 것에 대해 논의하겠습니다.

 

  • * 빠띳짜 사뭅빠-다(Paṭicca Samuppāda, 연기) 사이클은 ‘아윗자 빳짜야- 상카-라(avijjā paccayā saṅkhāra)’와 ‘상카-라 빳짜야- 윈냐-나(saṅkhāra paccayā viññāṇa)’로 시작합니다. 이 윈냐-나(viññāṇa)는 위빠-까 윈냐-나(vipāka viññāṇa)나 끼리야 윈냐-나(kiriya viññāṇa)가 아니라, 깜마 윈냐-나(kamma viññāṇa)입니다.

  • * 우리가 어떤 것을 보고, 어떤 것을 듣는 등을 할 때, 그것들은 우리에게 [단지] 일어나는 것입니다. 따라서 그 의식을 시작하는 아윗자-(avijjā, 무명/무지)가  없습니다. 그러한 의식(viññāṇa, 윈냐-나)과 관련된 빠띳짜 사뭅빠-다(Paṭicca Samuppāda) 사이클은 없습니다.

  • * 그러나, 우리가 이제 그것에 대해 행위하기로 결정한다면(예를 들어, 우리가 그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다시 바라보는 것), 우리는 상카-라(깜마) 사건을 시작하고 있을 수 있습니다. 이제 이 새로운 사건은 ‘아윗자- 빳짜야- 상카-라(avijjā paccayā saṅkhāra)’에서 ‘상카-라 빳짜야- 윈냐-나(saṅkhāra paccayā viññāṇa)’로 이어지는 (빠윳띠_pavutti) 빠띳짜 사뭅빠-다(Paṭicca Samuppāda) 사이클을 시작합니다. 즉, 이 윈냐-나(viññāṇa)는 상카-라(saṅkhāra)에 의해 시작되었고, 따라서 그것은 깜마 윈냐-나(kamma viññāṇa)입니다.

 

2-5. 보통 우리의 삶에서 일어나는 일은 6가지 감각 모두를 통해 감각 입력으로 포격을 받는 것입니다. 우리는 ‘뭔가 놓칠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에 가능한 한 많은 것/사람에 주의/관심을 돌리는/기울이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 마음에 ‘평화로움’이 없는 근본 원인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끊임없이 육감(六感)을 오가며 주의를 기울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좋아하는 것’이 너무 많으면, 우리 마음은 그 모든 감각 입력을 따르려고 모든 다양한 방향으로 이끌릴 것입니다.

 

  • * 바쁜 환경을 피함으로써(즉, 한적한 곳으로 가는 것), 이 효과를 줄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마음을 정화하지 않는 한, 여전히 여섯 번째 감각 입력, 즉 마음[의 관심]을 끌 수 없습니다[흥미/관심을 잃게 할 수 없습니다]. 이것이 명상의 핵심입니다. 마음이 탐욕(탐함), 증오(미워함), 무지(잘못된 시각/비전, ‘밋차- 딧티_micchā diṭṭhi’)로 부담이 된다면 ‘마음의 평화’를 가질 수 없습니다.

 

2-6. 따라서, 아라한은 가장 바쁜 곳에서도 평화로운 마음을 가질 수 있습니다. 소따빤나(Sotāpanna)도 어느 정도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 * 어떤 ‘막가 팔라(magga phala, 도과)가 성취되기 전에도 단지 담마(주로 아닛짜, 둑카, 아낫따)를 배우는 것만으로 ‘잘못된 시각/비전’과 관련된 오염(번뇌)을 점차적으로 제거함으로써, 사마디(samadhi)와 자-나(jhāna)에 쉽게 이를 수 있습니다.

  • * 그러면 마음을 스쳐가는 여러 종류의 윈냐-나(viññāṇa)의 수가 줄어들 것입니다(‘내 이웃의 차가 떠나는 소리인 것 같으니, 쇼핑몰에 가는 것일까?’, ‘(내 적은) 오늘 뭐하고 있을까?’, ‘나도 그런 몸을 가질 수 있다면 좋을 텐데!’, ‘어째서 나에게는 그런 좋은 집이 없지?’). 이것들이 우리 마음에 불필요하게 부담을 주는 모든 유형의 윈냐-나(viññāṇa)입니다.

  • * 그리고 그것들을 그냥 끄는 것[흥미/관심을 잃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가 우선 담마를 배워(‘불필요한 것에 대해 생각하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는가? 더 좋은 것이 있으며, 지속적인 행복을 주는 것에 대해 생각하는 것이다’), 우리 마음을 정화할 때, 그것들은  자동으로 꺼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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