퓨어 담마(Pure Dhamma)
붓다의 참된 가르침을 회복하기 위한 탐구
붓다께서 의미하신 '로까'는 무엇인가?
원문: Paṭicca Samuppāda 섹션의 ‘What Did the Buddha Mean by a “Loka”?’ 포스트
- 2021년 10월 11일 작성
‘로까’라는 낱말은 붓다께서 ‘물질(물리적) 세계’를 의미하신 것이 아닙니다. 붓다께서는 까-마 로까(kāma loka), 루빠 로까(rupa loka), 아루빠 로까(arupa loka), 마눗사 로까(manussa loka), 데와 로까(Deva loka) 등과 같은 다양한 유형을 의미하셨습니다.
소개
1. 이전 포스트인 ‘빠띳짜 사뭅빠-다 ㅡ 소개’에서, 우리는 빠딧짜 사뭅빠-다(Paṭicca Samuppāda)에 대한 새로운 논의를 시작했습니다. 숫따 삐따까(Sutta Piṭaka, 경장)의 상윳따 니까-야 12( ‘Saṁyutta Nikāya 12’ )에는 빠띳짜 사뭅빠-다(Paṭicca Samuppāda)에 대해 100개가 넘는 숫따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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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에 필자는 이 숫따들이 특정한 순서로 되어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 모든 숫따들을 논의하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얼마간의 핵심 통찰력을 얻기 위해 숫따들의 진행 상황을 보는 것은 유익합니다. 더욱이, 필자는 빠띳짜 사뭅빠-다(Paṭicca Samuppāda)와 띨락카나(Tilakkhana)(그리고 성스런 진리) 사이의 관계에 대해 진행 중인 논의와 관련된 숫따들만 살펴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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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전 포스트에서, 처음 두 숫따가 빠띳짜 사뭅빠-다(Paṭicca Samuppāda)에 대한 간략한 소개를 하고 있다고 가리켜 보였습니다.
2. 세 번째 숫따인 빠띠빠다- 숫따( ‘Paṭipadā Sutta (SN 12.3)’ )는 표준 아꾸살라-물라 빠띳짜 사뭅바-다(Akusala-mula Paṭicca Samuppāda)의 단계가 미래 고통/괴로움( “자-띠 빳짜야- 자라-, 마라나, 소까-ㅡ빠리데-와ㅡ둑카ㅡ도-마낫수빠-야사- 삼바완’띠”)으로 이어지는 현명하지 못한 행위들(‘아윗자- 빳짜야- 상카-라’로 시작함)을 묘사하고 있다고 가리켜 보입니다. 그러므로, 그것은 보통 사람의 밋차- 빠띠빠다(micchā paṭipadā, 잘못된 실천/생활 방식)을 묘사합니다. 그런 미래 고통/괴로움은 빠띳짜 사뭅빠-다(Paṭicca Samuppāda)의 단계들을 중단함으로써 멈춰질 수 있습니다. 그것은 지혜(성스런 진리에 대한 앎)를 기르고 아윗자-(avijjā)를 제거함으로써 달성됩니다. 일단 소따빤나(Sotapanna) 단계에서 이 세상의 참된 본질(띨락카나, Tilakkhana)을 이해하면, 삼마- 빠띠빠다-(sammā paṭipadā, 올바른 실천/생활 방식), 즉 성스런 팔정도를 따라 닙바-나(Nibbāna, 열반)에 이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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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고 가장 최근의 7분의 부처님께서 어떻게 미래 고통/괴로움이 빠띳짜 사뭅빠-다(Paṭicca Samuppāda) 과정을 통해 일어나는지, 즉 보통 사람이 왜 밋차- 빠띠빠다-(micchā paṭipadā)를 따르는지를 설명하는 7개의 숫따( SN 12.4부터 12.10까지)가 있습니다. (주어진 부처님의 가르침은 한정된 기간 동안만 지속/유지됩니다. 그것이 각 부처님께서 이 과정을 스스로 발견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물론, 이와 동시에 각 부처님께서는 재탄생 과정에서 어떻게 미래 고통/괴로움을 멈추는지, 즉 삼마- 빠띠빠다(sammā paṭipadā)를 알아 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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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재 논의의 관심인) 시리즈의 다음 숫따에서는 로까(loka)를 명료하게 합니다. 거의 모든 영어 번역에서, ‘로까(loka)’는 ‘세계’로 번역되어 있으며 붓다께서 ‘우리를 둘러싼 물리적 세계’ 또는 심지어 ‘별, 행성, 은하(성운) 등이 있는 우주’를 의미하셨다는 인상을 줍니다. 그러나 아래에서 우리가 보듯이, 붓다께서는 완전히 다른 것을 의미하셨습니다.
깟짜-나곳따 숫따(SN 12.15) ㅡ ‘로까’는 ‘물질(물리적) 세계’가 아니다
3. ‘깟짜-나곳따 숫따( ‘Kaccānagotta Sutta (SN 12.15)’ )는 첫 번째 단서를 줍니다. 깟짜-나곳따 존자가 붓다께 ‘삼마- 딧티(sammā diṭṭhi)’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묻자, 붓다께서는 “드와야닛시또 카브와-양, 깟짜-나, 로꼬 예부이예나ㅡ앗티딴쩨와 낫티딴짜(Dvayanissito khvāyaṁ, kaccāna, loko yebhuyyena-atthitañceva natthitañca)”라고 설명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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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loka)는 주로 두 가지 극단적인 견해를 기반으로 일어납니다. (i) 그것은 영원히 지속되며(앗티딴짜, atthitañca), (ii) 그것은 현재의 육체가 죽을 때 끝난다(낫티딴짜, natthitañ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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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서 붓다께서는 별, 행성, 은하(성운) 등이 있는 물질(물리적) 세계에 대해 말씀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붓다께서는 유정체라는 존재를 언급하시고 있습니다. 오늘날과 마찬가지로 [당시의] 사람들은 주로 두 가지 극단적인 견해를 지니고 있었습니다. (i) 유정체는 영원히 존재한다(즉, ‘영혼’ 또는 ‘아-트만’에 대한 믿음), (ii) ‘자신의 세계’(로까, loka)는 육체가 죽을 때 끝난다(오늘날의 물질주의/유물론 견해).
4. 그리고 나서, 붓다께서는 그 두 견해가 모두 옳지 않다고 설명하십니다. (아꾸살라-물라, Akusala-mula) 빠띳짜 사뭅빠-다(Paṭicca Samuppāda) 과정이 작동하고 있고 따라서 로까(loka)에 존재하는 한, 유정체는 (31 영역 내에) 존재할 것입니다. 물론, 대부분의 존재는 견딜 수 없는 고통/괴로움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그 유정체(중생)가 사성제(또는 띨락카나 또는 빠띳짜 사뭅빠-다)를 이해하기 시작하여 소따빤나(Sotapanna)가 될 때까지 끝나지 않을 것입니다.
따라서 붓다께서는 거의 항상 ‘로까(loka)’라는 낱말을 ‘유정체(중생)의 세계’를 지칭하는 데 사용하셨습니다. 이 숫따의 다음 구절은 또한 그것을 확인합니다.
“Tañcāyaṁ upayupādānaṁ cetaso adhiṭṭhānaṁ abhinivesānusayaṁ na upeti na upādiyati nādhiṭṭhāti: ‘attā me’ti. ‘Dukkhameva uppajjamānaṁ uppajjati, dukkhaṁ nirujjhamānaṁ nirujjhatī’ti na kaṅkhati na vicikicchati aparapaccayā ñāṇamevassa ettha hoti. Ettāvatā kho, Kaccāna, sammā diṭṭhi hoti.”
번역: “그러나 올바른 견해를 가진 자는 존재에 집착하지 않는다. 그는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에 어떤 이득이 있다고 보지 않는다. 즉 이 세상의 어떤 것도 가치가 없다고 본다(그리고 그래서, 나의 것, 즉 ‘앗따- 메_attā me’라고 여기지 않는다). 그는 일어나는 것이 단지 고통/괴로움일 뿐이고 그치는 것이 단지 고통/괴로움일 뿐이라는 것에 대해 당혹스럽거나 의심하지 않는다. 깟짜-나여, 이런 식으로 볼 때, 거기에 바른 견해가 있다.”
5. 숫따의 끝에 있는 다음 구절들은 확증을 더해줍니다.
“Sabbam atthī’ti kho, kaccāna, ayameko anto. ‘Sabbaṁ natthī’ti ayaṁ dutiyo anto.
Ete te, kaccāna, ubho ante anupagamma majjhena tathāgato dhammaṁ deseti:
– ‘avijjāpaccayā saṅkhārā; saṅkhārapaccayā viññāṇaṁ …pe… evametassa kevalassa dukkhakkhandhassa samudayo hoti.
– Avijjāya tveva asesavirāganirodhā saṅkhāranirodho; saṅkhāranirodhā viññāṇanirodho …pe… evametassa kevalassa dukkhakkhandhassa nirodho hotī’”ti.
번역:
“깟짜나여 ‘모든 것은 존재한다’고 하는 것은 하나의 극단이다. ‘모든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는 것은 두 번째 극단이다.
이 극단들의 어느 것으로도 치우치지 않고 따타-가따(Tathāgata, 여래)는 중간에서 담마를 가르친다.
- ‘아윗자-(avijjā)를 조건으로 하여 상카-라(saṅkhāra)가 일어난다. 상카-라(saṅkhāra)를 조건으로 하여 윈냐-나(viññāṇa)가 일어난다. (그리고 PS의 나머지 단계)… 이것이 이 고통/괴로움의 전체 덩어리의 기원(발생)이다.
- 그러나 아윗자(avijjā)가 남김없이 사라지고 그치면서 상카-라(saṅkhāra)가 끝난다. 상카-라(saṅkhara)의 그침으로, 윈냐-나(viññāṇa)의 그친다. (그리고 PS의 나머지 단계)… 이것이 이 고통/괴로움의 덩어리의 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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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또한, 붓다께서는 ‘모든 것(삽바, sabba)’을 ‘유정체(중생)과 관련된 모든 것’, 즉 5가지 무더기/ 12가지 아-야따나/ 6가지 다-뚜/ 등으로 정의하셨다는 것에 주목하세요. 따라서 ‘모든 것(all)’을 물질(물리적) 세계(즉, 물론, ‘모든 것’의 일부)로 한정하지 않으셨습니다. 5가지 무더기/ 12가지 아-야따나/ 6가지 다-뚜/ 등은 물질(물리적) 세계와 정신 세계를 포함합니다. 검색 결과인 ‘256 results for Kiñca AND sabbaṁ’를 참조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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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나 띠삐따까(Tipiṭaka)의 다른 숫따에서 붓다께서는 ‘물질(물리적) 세계’에 대해서도 언급하셨습니다.
로히땃사 숫따(AN 4.45) ㅡ ‘물리(물리적) 세계’를 다루는 숫따
6. ‘로히땃사 숫따( ‘Rohitassa Sutta (AN 4.45)’ )에서 로히땃사 데와(Rohitassa Deva)가 붓다께 와서 ‘물리(물리적) 세계의 끝까지 여행’하는 것이 가능한지 어떤지 묻습니다. 붓다께서는 그것은 불가능하다고 답하십니다. 로히땃사는 그가 전생에 요기(수행자)로서 아빈냐-(신통) 능력을 길렀을 때 그것을 확인했다고 말합니다. 그는 마노마야 까-야(manomaya kāya)(‘간답바’와 같음)로 한 걸음에 한 바다에서 다른 바다에 이르는 거리를 이동할 수 있었습니다. 어느 날, 그는 세계의 끝을 보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는 백 년 동안 여행을 하다가 도중에 죽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붓다께서는 다음과 같이 더 깊은 점을 말씀하십니다.
“ ‘Yattha kho, āvuso, na jāyati na jīyati na mīyati na cavati na upapajjati, nāhaṁ taṁ gamanena lokassa antaṁ ñāteyyaṁ daṭṭheyyaṁ patteyyan’ti vadāmi. Na cāhaṁ, āvuso, appatvāva lokassa antaṁ dukkhassa antakiriyaṁ vadāmi. Api cāhaṁ, āvuso, imasmiṁyeva byāmamatte kaḷevare sasaññimhi samanake lokañca paññāpemi loka samudayañca loka nirodhañca loka nirodhagāminiñca paṭipadan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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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은 위의 구절에서 붓다께서 설명하신 개념입니다. “닙바-나(Nibbāna, 열반)에 이르지 않고, 여행하여 ‘세상의 끝’에 이를 수는 없다. (재탄생과 관련된) 고통/괴로움이 끝날 때까지, 자신은 ‘이 세상의 끝’에 이를 수는 없다. 왜냐하면 내가 이 세상의 일어남과 그침과 이 그침에 이르는 (실천) 수행을 선언/표명하는 것은 그것이 시시각각 일어나는 것으로 제한된 인식과 마음이 있는 마노마야 까-야(manomaya kāya)가 있는 이 육체에 있기 때문이다.”
7. 현대 과학은 ‘우주의 가장자리(끝)’를 찾을 수 없음을 인정합니다. 우주의 크기는 정말 상상을 초월합니다. 인간이 우주 공간으로 가장 멀리 여행한 것은 달까지입니다. 인간이 조만간 또는 아마도 언젠가 가장 가까운 항성계까지라도 여행할 수 있을지는 의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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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별들 사이의 거리는 킬로미터(km)나 마일(mile)로 측정하기에는 너무 큽니다. 그런 광대한 거리는 ‘광년(light-year)’으로 계산됩니다. 1광년은 빛이 1년 동안 이동한 거리입니다. 우리에게 가장 가까운 별은 4광년 이상 떨어져 있으며, 이는 광선이 그 별까지 이동하는 데 4년이 걸린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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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교를 하면, 달까지의 거리는 약 1.3광초(light-second)에 불과합니다! 물론, 우리의 가장 빠른 로켓은 달까지 가는데 약 3일이 걸립니다. 그런 로켓은 가장 가까운 별 근처까지 가는데 80,000(800,000?)년이 넘게 걸릴 것입니다! 검색하여 그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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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고 우리 은하에는 수십억의 별이 있고, 우주에는 그런 은하가 수십억이 있습니다. 모든 은하를 셀 수 있는 방법은 없으며 한계가 없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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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것이 붓다께서 물질(물리적) 우주를 조사(탐사)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말씀하신 이유입니다. 우리는 우주 전체는 고사하고 가장 가까운 별과 그의 행성을 완전히 탐사할 수조차 없을 것입니다.
‘로까’는 자신의 (물질과 정신의) 세계다!
8. 그러므로, 붓다께서 ‘로까(loka)’를 언급하실 때, 유정체(중생)의 존재를 의미하셨다는 것을 이해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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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것이 붓다께서 31 영역을 아우르는 다양한 유형의 로까(loka)에 대해서만 말씀하신 이유입니다. 한 범주에서, 11, 16, 및 4 영역으로 된 까-마 로까(kāma loka, 욕계), 루빠 로까(rupa loka, 색계), 및 아루빠 로까(arupa loka, 무색계)가 있습니다. 까-마 로까(kāma loka, 욕계)에는 마눗사 로까(manussa loka, 인간계), 뻬따 로까(peta loka, 아귀계), 데와 로까(Deva loka, 천신계) 등 다양한 ‘로까(loka)’가 있습니다. 루빠 로까(색계)와 아루빠 로까(무색계)의 20개 영역에는 모두 브라흐마(Brahma, 범천)가 살며, 따라서 일반적으로 브라흐마 로까(Brahma loka)로 알려져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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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정체는 빠리닙바-나(Parinibbāna)에 도달(아라한의 죽음)할 때까지 항상 그 ‘세계’ 중 한곳에 살 것입니다. 따라서, ‘세계(세상)’는 그때까지 계속 존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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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따라서, 우리는 또한 세상(세계)의 그침(소멸)은 닙바-나(Nibbāna)와 동일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로까 사무다야’와 ‘로까 니로다’는 무엇인가?
9. 현재의 존재(예를 들어, 인간 존재)가 끝날 때, 그것은 ‘마눗사 로까(manussa loka)’에 있는 현재의 ‘인간 바와(human bhava)’의 끝입니다. 그러나 (아라한이 아닌) 우리 모두는 여전히 다양한 유형의 ‘로까(loka)’를 위한(태어나 사는) 다양한 유형의 ‘바와(bhava)’를 작동/유지시키는 많은 축적된 업 에너지를 지니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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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를 들어, 그 사람은 ‘데와 바와(Deva bhava)’를 붙잡아서 ‘데와 로까(Deva loka, 천신계)’에 태어날 수 있습니다. 자-나(선정)을 기른 사람은 ‘브라흐마 바와(Brahma bhava)를 붙잡아서 브라흐마 로까(Brahma loka)에 태어날 것입니다. 하지만 부모를 죽인 또 다른 사람은 ‘니라야 바와(niraya bhava)를 붙잡아서 ‘니라야(niraya, 지옥)에 태어날 것입니다. 그들 각자에게 그것은 그 업 에너지가 고갈될 때까지 그들의 ‘로까(loka)’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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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나 보통 유정체에게는 항상 가능한 많은 바와(bhava)가 있습니다. 우리 모두는 전생에 그런 ‘씨앗’을 많이 축적했으며 아마도 이 생에서 축적한 것은 소수일 것입니다. 그 때문에 아라한에 이를 때까지 이 과정은 끝이 없습니다. (새로운 바와를 작동/유지하기 위한) 그런 업 에너지를 생성하는 것이 로까(loka)의 일어남, 즉 로까 사무다야(loka samudaya)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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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로까 사무다야(loka samudaya)’는 아꾸살라-물라 빠띳짜 사뭅빠-다(Akusala-mula Paṭicca Samuppāda) 과정을 통해 일어납니다. 그것은 아윗자-(avijjā)가 작용함으로써 그런 업 에너지가 어떻게 축적되는지를 설명합니다. 다음 포스트에서 그 논의를 계속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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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로운 바와(bhava)의 축적(그리고 그런 축적된 바와를 붙잡는 것)은 아라한 단계에서 멈춥니다. 그러면 어떤 유형의 로까(loka)에도 더 이상 존재하지(태어나지) 않으며, 그것이 ‘로까 니로다(loka nirodha)', 즉 닙바-나(Nibbāna)입니다. 나중에 꾸살라-물라 빠띳짜 사뭅빠-다(Kusala-mula Paṭicca Samuppāda) 과정에서 그 논의를 하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