퓨어 담마(Pure Dhamma)

붓다의 진정한 가르침을 회복하기 위한 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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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카-라, 삶은 상카-라의 꾸러미


원문 : Key Dhamma Concepts 카테고리의 ‘Sankhāra –Life is Bundle of Sankhāra' 포스트

- 2017년 11월 26일 개정


산(San) 이란 무엇인가? 상사-라(삼사-라)의 의미' 소개 포스트에서, ‘상카-라(sankhāra)’라는 용어를 소개하고, 그 다음 포스트에서 ‘상카-라(sankhāra)’를 관련 용어와 함께 좀 깊게 검토하였습니다. 이들 용어는 중요하므로 이 포스트에서 좀 더 상세하게 검토해 보겠습니다.


1. 붓다 담마는 모든 상카-라(sankhāra)가 무익하게 행해지는 것이라는 사실에 기초합니다. 즉, ‘삽베- 상카-라 아닛짜-(sabbē sankhāra aniccā)’입니다.


* 이전 포스트에서 본 바와 같이, 상카-라(sankhāra = san + kāra)는 31 영역의 세상에 사는 동안 행한 것(생각, 말, 몸의 행위)입니다. 여기서, 까-라(kāra)는 행위입니다. 여기에는 숨쉬고, 걷고, 하루 동안 잡다한 일을 생각하는 것도 포함됩니다.

* 모든 상카-라는 마음에 일어납니다. 마음에 상카-라가 일어나지 않고는 중얼거리는 것이나 어떤 조그만 행위도 할 수 없습니다. 마음은 너무나 빠르게 일어나므로, 단지 말하거나 행하는 것 같이 느낍니다. 이에 대해서는 ‘Sankhāra – What It Really Means’ 포스트와 ‘Difference Between Dhammā and Sankhāra’ 포스트를 보세요.


2. 모든 상카-라(sankhāra)는 생각을 필요로 합니다. 어떤 생각은 말과 몸의 행으로 나타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호흡 같은 어떤 행은 의식적인 생각 없이 일어나며, 과보를 낳지 않으며 단지 상카-라(sankhāra)일 뿐입니다.


* 그러나, 상카-라(sankhāra)는 로-바(lōbha, 탐함), 도-사(dōsa, 성냄), 모-하(mōha, 미혹함), 또는 아로-바(alōbha), 아도-사(adōsa), 아모-하(amōha)가 한몫을 하면서 의식적인 생각을 수반할 때, 아비상카-라(abhisankhāra, 강성 상카-라)가 됩니다. 이들 아비상카-라(abhisankhāra)가 나쁘거나 좋은 업의 결과를 가져오게 됩니다.

* 아라한들도 입멸할 때까지는 상카-라를 행합니다. 그러나 아라한들은 미래에 과보를 가져오는 정신적 에너지(업)를 축적하는 것이 되는 아비상카-라(강성 상카-라)를 행하지 않으면서, 현생을 지속되게 하는 업력이 소진될 때까지 살아가게 됩니다.

* 상카-라(sankhāra)가 아비상카-라(abhisankhāra, 강성 상카-라)로 되려면, 6가지 근본뿌리(로-바, 도-사, 모-하, 아로-바, 아도-사, 아모-하) 중의 하나가 필연적으로 관여되어야 합니다.


3. 탐함(로-바)과 성냄(도-사)과 미혹함(모-하)이라는 나쁜 뿌리가 관여되면, 그 생각과 말과 행동은 삶 중에 나쁜 결과나 사악처에 재탄생하는 결과로 이끄는 깜마 삐자(kamma beeja, 깜마 씨앗)가 생기게 할 것입니다. 이들이 아뿐나-비상카라(apunnābhisankhāra = apunna + abhisankhāra, 나쁜 강성 상카라)입니다. 여기서, 아뿐나(apunna)는 ‘불공덕한’ 의미입니다.


* 반면에, 관대함(아로-바)과 친절함(아도-사)과 현명함(아모-하)이라는 좋은 뿌리로 행한 아비상카-라(abhisankhāra, 강성 상카-라)는 삶 중에 좋은 결과나 인간계 이상의 영역에 재탄생하는 결과로 이끕니다. 이들이 뿐나-비상카라(punnābhisankhāra = punna + abhisankhāra, 좋은 강성 상카라)입니다. 여기서, 뿐나(punna)는 ‘공덕되는’ 의미입니다.

* 뿌리가 관여되지 않으면, 그 행위는 단지 상카-라(sankhāra)이며, 그 깜마 씨앗은 못쓰는 것이며 그 안에 에너지가 없습니다. 기본적으로 ‘아비상카-라(abhisankhāra)가 아닌 상카-라(sankhāra)는 깜마 씨앗을 생성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4. 예를 들어 보면, 손에 칼을 쥐고 걸어가는 어떤 사람을 보았을 때, 그 사람이 어떤 류의 상카-라를 생성하고 있는지 우리는 결론지어 말할 수 없습니다.


* 그 사람은 단지 칼을 한 곳에서 다른 곳으로 옮기려고 할 수 있습니다. 그 경우에, 그것은 단지 상카-라(sankhāra)일 뿐입니다.

* 그 사람이 누군가를 찌르려고 계획하고 있다면, 그 사람은 아뿐나-비상카-라(apunnābhisankhāra, 나쁜 강성 상카-라)를 생성하고 있습니다.

* 그 사람이 올가미에 걸려 꼼짝 못하고 있는 동물을 구하려고 계획하고 있다면, 그 사람은 뿐나-비상카-라(punnābhisankhāra, 좋은 강성 상카-라)를 생성하고 있습니다.

* 말이나 몸의 행위에서, 정말로 중요한 것은 말이나 행동 뒤에 있는 의도입니다.


5. 다른 예를 들어 보면, 가난한 사람을 위해 각각 병원을 지어 기부한 두 사람이 있다고 할 때, 두 사람이 좋은 행을 한 것처럼 보이기는 하지만, 모두 반드시 뿐나-비상카-라(punnābhisankhāra, 공덕행)를 했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한 사람은 가난한 사람에 대한 자애의 마음보다는 다가오는 선거에서 승리하기 위한 저의에서 행한 것이었는지도 모릅니다. 이 경우에 그 사람에게는 비록 얼마간의 뿐나-비상카-라 (punnābhisankhāra, 공덕행)가 수반되었을 지는 몰라도, 대부분 아뿐나-비상카-라 (apunnābhisankhāra, 불공덕행)가 생성되었을 것입니다.


* 붓다를 제외하고 왜 어떤 누구도 업(깜마, kamma)을 (그 과보와 함께) 구별해 내기가 어려운 지 그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의 어떤 행위는 두 종류의 아비상카-라(공덕행 및 불공덕행)를 모두 포함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새가 벌레를 파내고 있는 것을 보고 그 새를 쫓아낸다고 한다면, 두 종류의 아비상카라를 행한 것이 될 것입니다. 벌레의 생명을 구한 것은 뿐나-비상카-라(공덕행)을 한 것이지만, 새가 먹이를 먹지 못하게 했기 때문에 아뿐나-비상카-라(불공덕행)를 한 것입니다. 이 두 종류의 아비상카-라로 인해 각각 미래에 그 과보를 받을 수 있습니다.


6 ‘트롤리 문제(누구를 구할 것인가?)’로 잘 알려진 윤리학의 문제가 있습니다. 한 사람의 생명을 희생하여 다섯 명의 생명을 구할 수 있는 상황의 문제입니다. 자세한 것은 http://en.wikipedia.org/wiki/Trolley_problem 사이트를 보세요. 이 사고 실험에 대해서 많은 토론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붓다 담마에 기초하여 다음과 같은 의견을 말할 수 있습니다.


* 한 사람의 생명을 희생하여 다섯 사람의 생명을 구하는 행동을 하기로 결정하여 행한다면, 그 행위자는 다섯 명의 생명을 구하는 ‘좋은 깜마’를 축적할 것이며, 또한 한 사람을 죽이는 ‘나쁜 깜마’를 축적할 것입니다. 이 두 가지 깜마는 각각 미래에 과보로 결실될 수 있습니다.

* 그러나 (붓다 담마에서는) 훨씬 더 깊은 점이 있습니다. 희생당하는 사람이 아라한이거나 적어도 수다원이고 다른 다섯 사람은 평범한 사람이거나 범죄자이었다면 어떻게 될까요? 그러면 그 행위자는 ‘좋은 깜마’의 강도보다 훨씬 더 강한 ‘나쁜 깜마’를 축적할 것입니다.


7. 어떤 사람이 말을 하거나 몸을 움직일 때, 우리는 적어도 어떤 종류의 상카-라(sankhāra)가 관계되어 있는지 추측해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이 조용히 앉아 있다면, 그 사람은 ‘산책하러 나갈까 말까’ 하고 생각하는 것(단지 상카-라)부터 살인 계획(최악의 아뿐나-비상카-라)까지 다양한 종류의 상카라를 생성하고 있을 수 있습니다.


* 우리는 말이나 행동보다는 생각을 통해 아비상카-라(abhisankhāra, 강성 상카-라)를 더 많이 생성합니다.

* 다른 사람과 불화(또는 논쟁)가 있을 때, 우리는 보통 폭력을 행사하지는 않고 거친 말도 삼갑니다. 그러나 마음의 청정 여하에 따라, 작은 규모로 아뿐나-비상카-라(apunnābhisankhāra, 나쁜 강성 상카-라)를 어마어마한 양이 되도록 생성하고 있을 수 있습니다. 이에 대해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거의 경시하는 경향이 있지만 중요한 요소입니다.

* 어떤 사람의 외견 행동과 말이 자제되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면, 우리는 자동적으로 그 사람을 ‘좋은 사람’이라고 여깁니다. 그리고, 그 사람은 외관으로 나타내어 자신을 속이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마음이 불순하다면, 그 마음에는 싫어하는 생각 또는 탐하는 생각이 많이 있을 수 있습니다. 말 또는 행동을 하든 하지 않든 그 생각들은 깜마 씨앗을 계속 축적합니다.


8. 그러므로 다른 사람을 판단하는 것은 전혀 쓸데없습니다. 각자가 진실을 잘 알고 있고, 자신의 생각과 말과 행동만 제어할 수 있습니다. 이것들은 근본적으로 의도에 기초하고 있습니다.


* 그러나, 우리는 우리 자신의 의도가 무엇인지 정확히 압니다. 그것(의도)이 정말 중요한 것입니다. 유능한 변호사를 고용하여 법정에서 속일 수 있을지는 몰라도, 심은 것의 결과를 미래 어떤 시점에서 거두게 될 것입니다.


9. 주어진 행위에 포함된 상카-라(sankhāra)의 종류를 아는 것, 이것이 아-나-빠-나(ānāpāna) 명상의 기본입니다. 이에 대해서는 ‘What is Anapana?’ 포스트를 보세요. 누군가 낚시하러 가자고 했을 때, 그 업의 종류는 물고기를 죽이는 즐거움과 관련되어 있을 것임을 생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것이 까-야-누빠사나-(kāyānupassanā)의 기본 형태입니다. 자신이 하고 있는 몸의 행을 관찰하여, 그것이 아뿐나-비상카-라(apunnābhisankhāra, 나쁜 강성 상카-라)이면 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 경우에 물고기의 생명을 취하여 즐기는 것은 ‘아뿐나-비상카-라’입니다.


* 몸의 행은 취하는데 시간이 걸리고 관찰할 시간이 있기에 (아뿐나-비상카-라를 행하는 것을) 피하기가 더 쉽습니다.

* 말의 행은 행동하는 것보다 더 빨리 나오므로 (피하기 위해서는) 좀 더 솜씨를 필요로 하는 행입니다. 하지만, 몇 마디 말을 한 후에라도 멈출 수 있습니다.

* 생각의 행은 (피하기가) 가장 어렵습니다. 까-야-누빠사나-(kāyānupassanā, 신념처)를 우선 실천하고, 찟따-누빠사나-(cittānupassanā, 심념처)를 실천하는 것은 이 때문입니다.


10. 아-나-빠-나(ānāpāna) 명상을 시작하고자 하면, 먼저 몸의 행을 제어해야 합니다. 몸의 행을 제어하면 할수록 명상하기가 쉬워지며, 말의 행을 제어하기가 쉬워집니다. 몸의 행과 말의 행을 제어할 수 있을 때, 생각도 더 쉽게 제어할 수 있을 것입니다.


* 더구나, 계획적으로 뿐나-비상카-라(punnābhisankhāra)를 행하면, 아뿐나-비상카라(apunnābhisankhāra)를 쉽게 다룰 수 있습니다. 공덕행에 집중함에 따라 마음은 자동적으로 불공덕행을 생각하지 않게 됩니다.

* 이것이 바로 진정한 불교 명상이 단순한 좌선 이상의 의미를 갖는 이유입니다. 핵심은 마음을 청정하게 하는 것이며 어떤 경우에도 마음의 오염을 피하는 것입니다. 일생동안 호흡명상을 하더라도 어떤 경지의 마음청정에 도달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 여기에 대해서는 ‘리빙 담마’ 섹션에서 실천을 시작하는 방법과 함께 상세히 설명되어 있습니다. 처음에는 재탄생을 믿는 것조차 필요하지 않습니다.


11. 닙빠-나(Nibbāna)는 제시한 대로 뿐나-비상카-라(punnābhisankhāra)와 아뿐나-비상카-라(apunnābhisankhāra)를 모두 삼가는 것으로 얻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닙빠-나(Nibbāna)에 이르는 위해서는, 모든 종류의 상카-라에 대한 진정한 성품, 즉 아닛짜(anicca)와 둑카(dukkha)와 아낫따(anatta)를 이해하기 위해 뿐나-비상카라(punnābhisankhāra)를 행하고 담마를 배울 필요가 있습니다. 이것이 마음의 청정에 이르게 합니다.


* 근본적으로 볼 때, 단지 뿐나-비상카-라(punnābhisankhāra, 공덕행)을 하는 것만으로는 마음을 청정하게 하기에 충분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곳에서 시작해야 아닛짜(anicca)와 둑카(dukkha)와 아낫따(anatta)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 대해서는 ‘리빙 담마’ 섹션을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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