퓨어 담마(Pure Dhamma)

붓다의 진정한 가르침을 회복하기 위한 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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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상함이 괴로움의 원인이라면 닙바-나가 가능한가?

 

원문: Comments/Reviews 섹션의 ‘Would Nibbāna be Possible if Impermanence is the Cause of Suffering?’ 포스트

 

1. 필자는 최근에 Mr. Lance Potter로부터 매우 통찰력 있는 이메일을 받았습니다. 그의 이메일에 들어가기 전에 몇 가지 배경을 설명하겠습니다.(물론 필자는 논평자의 동의가 있어야만 논평자의 이름을 말할 수 있습니다.)

 

  • * 그는 ‘아닛짜, 둑카, 아낫따 – 잘못된 해석’ 포스트에 대해 논평했습니다. 그 포스트에서, 필자는 앗잣따닛짜 숫따(Ajjhattanicca Sutta)에 있는 다음 한 구절에 대해 간략하게 논의했습니다.

“yadaniccam tan dukkham, tan dukkham tadanatta”

  • * 이 구절은 ‘띠삐따까의 싱할라 번역’(‘상윳따 니까-야ㅡ3, 빠알리/싱할라 띠삐따까의 p.3’ 참조)을 포함하여, 현재 대부분의 테라와다 문헌에서 다음과 같이 번역되어 있습니다.

“어떤 것이 무상(impermanence)하면, 괴로움(suffering)이 일어나고, 그러므로 무아(no-self)다” 

  • * 그 포스트에서, 필자는 그런 번역으로 인해 일어나는 몇 가지 모순에 대해 논의했습니다. 필자는 또한 아닛짜(anicca)와 아낫따(anatta)에 대한 올바른 해석, 즉 ‘장기적으로 어떤 것도 만족스럽게 유지할 수 없다’와 ‘(따라서) 이 재탄생 과정에서는 참으로 난감하다’를 취한다면 모순이 없다는 점을 가리켜 보였습니다.

 

2. 그의 이메일에서 관련 내용을 인용하겠습니다.

 

“아닛짜(anicca)가 단순히 무상함(impermanence)을 의미하고 그 무상함이 둑카(dukkha, 괴로움)로 이어진다고 하는 논리(추론)의 선은 제게는 약해 보입니다. 약점은 그 연결고리가 명백히 누락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논리적으로 무상함(impermanence)과 둑카(dukkha, 괴로움) 사이에는 반드시 개입하는 연결고리, 즉 필요한 연결고리가 있어야 합니다. 그 연결고리가 둑카(괴로움)의 실제 원인이 될 것입니다. 만일 둑카(괴로움)의 원인이 단순히 무상함(impermanence)이라면, 깨달은 자는 누구도, 심지어 부처님조차도 둑카(괴로움)의 감소를 경험하지 못할 것입니다. 이것은 깨달았든 깨닫지 못했든 윤회에서 무상함이라는 조건은 변하지 않고 그대로 있기 때문입니다. 깨달음에서 변화하는 것은 무상한 조건 자체가 아니라 윤회(상사라)의 무상한 조건에 대한 들러붙음입니다.

 

달리 말하면, 아닛짜(anicca)가 단순히 무상함(impermanence)을 의미하고 그 사이의 연결고리를 무시한다면, 부처님의 깨달음과 그에 따른 둑카(괴로움)의 감소는 윤회의 조건으로서의 무상함(impermanence)이 감소되었음을 의미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모든 이들은 그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무상함의 조건에 갑작스러운 변화를 동시에 경험했을 것입니다.

 

무상함에 대한 부처님의 관계만 바뀐 것이지, 무상함 자체가 변한 것은 아닙니다. 또는, 님(Lal)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무상한 것에서 행복을 추구하는 것의 결과에 대한 부처님의 인식입니다[역자주: 부처님의 인식이 변한 것입니다].”

 

(강조 표시는 필자가 한 것입니다.)

 

3. 이 메일의 내용은 매우 통찰력 있는 코멘트(논평)이며 그 추론을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었습니다. 이것은 올바른 ‘위빳사나(통찰 명상)’를 할 때 일어나는 것입니다. 붓다 담마에 대해 깊이 생각할 때, 해석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보기 시작할 수 있습니다.

 

  • * Lance님이 가리켜 보인 것은 현대 과학은 ‘무상함(impermanence)’이 우리가 살고 있는 우주의 고유한 특성이라는 것을 분명히 설명(예증)했기 때문에 괴로움을 제거하고 닙바-나(열반)을 얻기 위해(즉, ‘아닛짜’를 번역한 것으로 ‘무상함’을 취한다면) ‘무상함을 제거’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는 것입니다.

 

4. 그 점을 강조하기 위해, 우리는 우리 태양계와 같은 모든 세계가 수십억 년마다 완전히 파괴되고 재형성된다는 것을 상기할 필요가 있습니다. 게다가, 열역학 제2법칙에서 말하는 바와 같이 ‘무상함(impermanence)’과 끊임없는 변화는 우리 우주의 모든 것에 내재된(고유한) 것입니다. ‘열역학 제2법칙은 아닛짜의 일부다!’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 * 그러므로, 만약 둑카(괴로움)가 무상함(impermanence) 때문에 생긴다면, 그리고 우리가 미래의 괴로움(dukha, 둑카)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 그 '무상함'의 근본 원인을 제거해야 하기 때문에,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 될 것입니다. 현대 과학에 따르면, 물질적인 것과 관련된 무상함(impermanence)은 제거하기는 고사하고 피할 수 없습니다.

 

5. 무상함(impermanence)은 물질적 대상과 관련된 낱말임을 다시 한 번 강조하고자 합니다. 그런 물질적 대상은 우리에게 [정신적] 괴로움을 줄 수 없습니다. 우리에게 괴로움을 주는 것은 그런 대상에 대한 우리의 갈망(또는 ‘잇짜_icca’)입니다. 이것을 닛짜 산냐(nicca sanna)라고 합니다. ‘아닛짜(anicca)’인 세상에서 우리는 닛짜 산냐(nicca sanna)라는 잘못된 인식을 지니고 있습니다. ‘주요 담마 개념’ 섹션의 ‘아닛짜 ㅡ 진정한 의미’(Anicca – True Meaning) 서브섹션에 있는 포스트들을 참조하세요.

 

  • * icca는 ‘ichchä’로, nicca는 ‘nichchä’로, anicca는 ‘anichchä’로 발음된다는 것에 유의하세요..

  • * 집이 불에 타면 누가 고통(괴로움)을 받을까요? 집에 들러붙음이 있는 집주인만 고통을 받습니다. 다른 사람에게는 고통을 주지 않습니다. 낡은(황폐한) 집이라면, 집주인도 그 집에 대한 들러붙음이 약하기 때문에 큰 고통을 받지 않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무엇인가에 대한 들러붙음이 클수록, 그것이 없어지거나 손상된다면 우리의 고통은 더 커질 것입니다. 이것은 단순한 관찰이지만 심오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6. 둑카 삿짜(Dukkha Sacca)는 그 둑카가 제거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둑카 삿짜(Dukkha Sacca)’에서 둑카(Dukkha)는 ‘이 세상에는 둑카(괴로움)가 있으며, 그것은 제거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첫 번째 성스런 진리는 괴로움만 나타내는가?’ 포스트를 참조하십시오.

 

  • * 그 숫따(sutta)에 그 구절로 설명되었듯이, 이 세상의 세 가지 특성은 서로 연관되어 있습니다. 그 뿐만 아니라, 핵심적인 특징은 ‘아닛짜(anicca)’입니다. 즉, 이 세상에 있는 어떤 것도 장기적으로 우리가 만족하는 대로 유지될 수 없습니다. 숫따(경)에서는 아닛짜 특성(anicca nature)을 지닌 것에 대해 우리가 가진 닛짜 산냐(nicca sanna) 때문에 둑카(괴로움)가 일어나고 따라서 세 번째 특성(anatta, 아낫따)이 자명해진다고 말합니다. 즉, (‘닛짜 산냐_nicca sanna’를 제거하지 않는 한) 둑카(괴로움)을 제거할 수 없기 때문에 참으로 난감합니다.

 

7. 따라서 닛짜(nicca)는 자신의 마음 속의 인식입니다. 우리는 끝없는 재탄생을 통해 우리에게 감각적 즐거움을 주는 감각 대상을 획득함으로써 행복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계속해서 ‘그런 대상에 대한 갈망’을 하고 그것들이 우리에게 행복을 줄 것이라고 믿습니다. 이것은 닛짜(nicca)라는 잘못된 인식입니다. 그것은 닛짜 산냐(nicca sanna)라고 합니다.

 

  • * 따라서 닙바-나(열반)의 4단계는 반대쪽 산냐(sanna), 즉 아닛짜 산냐(anicca sanna)를 단계적으로 계발할 때 달성되며 아라한뜨후드(Arahanthood, 아라한과)에서만 완료됩니다.

  • * 이 세상의 어떤 것도 갈망하지 않는다면, 이 세상에 기꺼이 묶는(Paṭicca = ‘pati’ + ‘icca’)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만약 우리가 이 빠띳짜(Paticca) 과정(즉, 이 세상 것에 기꺼이 묶는 과정)을 멈출 수 있다면, 사뭅빠-다(Samuppāda, ‘sama’ + ‘uppada’), 즉 그런 갈망에 상응하는 태어남이 없을 것입니다. 따라서 빠띳짜 사뭅빠-다(Paṭicca Samuppāda)에 따른, 더 이상 재탄생은 없을 것입니다. 빠띳짜 사뭅빠-다 ㅡ '빠띠+이치차' + '사마+웁빠-다' 포스트를 참조하십시오. 그리고 그것이 라-각카야(rāgakkhaya), 즉 닙바-나(Nibbāna, 열반)입니다.

 

8.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둑카(괴로움)가 일어나는 것을 방지할 수 있는 가능한 방법이 있습니다. 우리는 무상한 물질 대상에 대한 모든 유형의 갈망(갈애)을 우리 마음에서 제거해야 합니다.

 

  • * 물론 그것은 말하기는 쉽지만 행하기는 어렵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 것들이 유형의 감각적 즐거움을 주기 때문에 그것들에 들러붙습니다. 아무도 그것을 부정할 수 없으며, 우리가 시작없는 때부터 들러붙었던 많은 감각적 즐거움을 거부하는 것은 매우 어렵습니다.

  • * 따라서 우리는 단계적으로 행해야 합니다. (과거의 많은 생에 걸쳐 필요한 마음성향을 개발한 소수를 제외하고는) 아무도 그것을 빠르게 행할 수 없습니다.

  • * 닙바-나(열반)로 가는데 결정적으로 중요한 첫 단계는 소따빤나 단계입니다. 그리고, 그 단계는 아닛짜(anicca), 둑카(dukkha), 아낫따(anatta)에 대한 첫 이해를 얻음으로써 도달됩니다.

  • * 믿기 어렵겠지만, 어떤 부도덕한 것들은 장기적 이익을 위해 행할 가치가 없다는 깨달음이 일어나는 소따빤나 단계에서 세상 것들에 대한 우리 갈망의 엄청난 부분이 제거될 것입니다. 그 깨달음은 마음에 새겨지고 그것에 대해 생각할 필요가 없습니다.

 

9. 나카시카 숫따(Nakhasikha Sutta)(‘상윳따 니까-야ㅡ2, 빠알리/싱할라 띠삐따까의 p.212’)에서는 보통 사람이 지닌 오염원(번뇌)의 양을 지구 전체의 흙의 양이라고 한다면, 소따빤나가 제거해야 할 남아 있는 오염(번뇌)의 양은 손톱 위에 집어 올려진 흙의 양이라고 할 수 있다고 명시되어 있습니다. ‘소-따빤나가 제거한 유일한 아꾸살라는 무엇인가?’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 * 짧지만 숫따(sutta)의 에센스(정수)에 대한 올바른 번역은 온라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Nakhasikha Sutta: The Tip of the Fingernail

  • * 그처럼 많은 양의 번뇌(오염원)가 밋차- 딧티(micchā diṭṭhi)를 제거하는 것만으로 제거되기 때문에, 아닛짜(anicca), 둑카(dukkha), 아낫따(anatta)를 이해함으로써 밋차- 딧티(micchā diṭṭhi)를 제거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그리고 이 세 가지 특성의 핵심은 이 세상의 ‘아닛짜 특성/본질(anicca nature)’을 이해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필자가 기회 있을 때마다 이 점을 계속 강조하는 이유입니다.

  • * 그러나, 마음을 어느 정도 정화하기 전에는 ‘아닛짜 특성/본질(anicca nature)’을 파악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재탄생에 대한 믿음이 없어도 길을 가기 시작함’ 포스트 및 ‘리빙 담마’ 섹션의 다른 포스트들을 참조하세요.

 

또한, ‘Logical Proof that Impermanence is Incorrect Translation of Anicca’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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