퓨어 담마(Pure Dhamma)

붓다의 진정한 가르침을 회복하기 위한 탐구


{"google":["PT Serif","Noto Sans KR"],"custom":["Nanum Gothic","Nanum Barun Gothic"]}

 

깜마에서 의도란 무엇인가?

 

원문: Comments/Reviews 섹션의 ‘What is Intention in Kamma?’ 포스트

- 구 포스트; 2018년 2월 21일 개정

 

1. 여기 2015년 9월 초에 받은 이메일이 있습니다(이메일의 관련 부분만 보여 드립니다).

 

사람들은 소따빤나를 모욕하여 심각한 양의 나쁜 깜마를 축적할 수 있으므로 어느 누구에게나 나쁜 행위를 하지 않도록 매우 조심해야 한다고 님께서는 여러 번 언급하셨습니다. 깜마는 각자의 마음에 기반하여 생성됩니다. 청정한 마음으로 행동하고 말하면, 나쁜 깜마가 생기지 않을 것입니다. 악한 마음으로 행동하고 말하면, 나쁜 깜마가 생길 것입니다.

 

만약 님의 마음 상태가 같다면 소따빤나에게 나쁜 행위를 하는 것은 개미에게 나쁜 행위를 하는 것과 다름이 없으므로, 그 인간 존재가 깨달은 지를 모른다면 다른 깜마를 초래하지 않을 것입니다.

 

성자에게 나쁜 행위를 하는 것을 그렇게 훨씬 더 나쁘게 하는 것은 그와 같이 일부 사람들에게 나쁜 행위를 하기 위해서는 매우 비뚤어진(그릇된) 마음 상태가 필요하다는 사실입니다. (저는 새끼 고양이에게 화를 내는 것과 비교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ㅡ )

 

저는 님께서 이 주제에 대해 오해를 하고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것은 마치 님께서 ‘우연히’ 나쁜 깜마를 축적할 수 있는 것처럼 들렸는데, 제 생각으로는 그것은 올바르지 않다고 봅니다.

 

  • * 위의 코멘트에서, 굵은 글씨로 강조한 것은 필자는 각 요점을 나타내기 위한 것입니다. 필자는 그 첫 번째 진술(요점)이 의미하는 것은 부정적인 생각을 갖는 것은 나쁜 것이며 그것이 누구를 향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 * [메일의 코멘트에서] 두 번째 요점은 대상인 사람(또는 존재)의 지위(상태)를 모르면 그 깜마(업)에 대해 책임을 지지 않아야 한다(책임이 없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2. 다른 많은 사람들이 이 문제 또는 다소 관련된 문제에 대해 비슷한 생각을 했을 것이므로, 모든 사람과 답변을 공유하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질문들을 논의하기 위해 개시한 새로운 토론 포럼(2017년 12월부터)이 있습니다. ‘Forum’을 참조하세요.

 

  • * 깜마-(kammā, 업)가 어떻게 작용하는지 (확실하게) 알아내는 것은 오직 부처님만이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오직 부처님만이 식별할 수 있는 것 중 하나입니다. 그러나, 필자가 전에 지적했듯이, 우리는 붓다께서 분명하게 말씀하신 법칙과 일치하는 몇 가지 일반적인 경향을 파악할 수 있습니다. ‘깜마란 무엇인가? – 깜마가 모든 것을 결정하는가?’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여기서 우리는 조금 더 깊이 분석합니다.

 

3. 깜마- 위빠-까(kammā vipāka)를 어떻게 판단할 것인지 평가할 때 잊지 말아야 할 두가지 핵심 요소(요인)가 있습니다.

 

  1. 1) 다사 아꾸살라(dasa akusala) 중의 어떤 것이 의도일까요? 예를 들어, 그것은 목숨을 빼앗거나, 도둑질하거나, 거친 말을 하는 것일 수 있습니다. 영향(작용 효과)을 받는 사람은 이 단계에 관여되지 않습니다. “cetana ham bhikkhave kammaṃ vadami” 구절에 있는 ‘쩨따나(cetana)’는 단지 다사 아꾸살라(dasa akusala) 중의 어떤 것이 자신의 마음 속에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모두입니다.

  2. 2) 그 다음, 그 깜마- 위빠-까(kammā vipāka)의 강도는 그 깜마-(kammā)에 의해 영향(작용 효과)을 받는 유정체의 의식의 수준(질)에 따라 달라집니다. 예를 들어, 사람을 죽이는 것은 동물을 죽이는 것보다 더 강한 깜마 위빠-까(kamma vipāka)를 가져옵니다.

 

그것이 모든 주어진 상황을 분석하는 가장 명확한 길(방법)입니다.

 

4. 예를 들어, 띨락카나(Tilakkhana)에 대한 최근 법문(discourse)에서, 필자는 어떤 사람이 폭탄으로 많은 사람들을 죽인 경우에 대해 논의했습니다. ‘틸락카나 ㅡ 영어 법문’에 있는 ‘법문 2’를 참조하세요.

 

  • * 그의 의도(cetanā, 쩨따나-)는 죽이는 것이었습니다. 따라서 관련된 다사 아꾸살라(dasa akusala)는 ‘빠-나띠빠-따(pānatipāta)’, 즉 생명을 앗아가는 것입니다.

  • * 이제 두 번째 단계로 넘어갑니다. 그는 누가 죽었는지조차 모를 수 있습니다. 우연의 일치로 만약 살인자의 부모가 폭탄으로 죽었다면, 그는 아-난따리야 빠-빠 깜마-(ānantariya pāpa kammā)를 지은 것이 됩니다. 아라한이 죽었더라도 마찬가지입니다. 소-따빤나(Sōtapanna)가 죽었다면, 그것은 아-난따리야 깜마-(ānantariya kammā)는 아니지만 여전히 수천 명의 보통 사람을 죽인 것과 맞먹습니다.

  • * 따라서, 깜마(kamma)을 지을 때 쩨따나(cetana)는 다사 아꾸살라(dasa akusala) 중의 어떤 것이 자신의 마음 속에 있다는 것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것은 하나 이상일 수 있습니다. 폭격의 경우, ‘빠-나-띠빠-따(pānātipātā)’ 외에 ‘밋차- 딧티(micchā diṭṭhi, 잘못된/그릇된 견해)’와 ‘탐욕’도 있을 수 있습니다.

  • * 위의 두 단계로 다양한 상황을 분석할 수 있습니다.

 

5. 우리는 다섯 가지 아-난따리야 깜마-(ānantariya kammā)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 깜마-는 너무 심각해서 다음 생에 니라야(niraya, 지옥)에서 그 위빠-까(vipāka)를  받게 되어 있습니다. 그 (아-난따리야) 깜마-(kammā)는 자신의 어머니를 죽이고, 자신의 아버지를 죽이고, 아라한을 죽이고, 부처님에게 상해를 입히고(누구도 부처님의 생명을 앗아갈 수는 없음), 그리고 상가에 분열을 일으키는(실제로 잘못된 버전의 붓다 담마를 전파하려는 것을 의미함) 것입니다.

 

  • * 보통 사람을 죽이는 것은 아-난따리야 깜마-(ānantariya kammā)가 아니기 때문에, 누가 죽임을 당하느냐에 따라  ‘깜마-(kammā)의 강도’가 달라지는 것은 분명합니다.

  • * 모든 다른 나쁜 행위를 하는 것에 대한 깜마 위빠-까(kamma vipāka)도 이와 유사합니다. 아라한을 해치는 것은 보통 사람을 해치는 것에 비해 수백만배나 심각할 것입니다. 따라서 논리적으로, 아나-가-미(Anāgāmi), 사까다-가-미(Sakadāgāmi), 소-따빤나(Sōtapanna)를 해치는 것은 상응하는 수준의 결과를 가져올 것입니다.

  • * ‘생명의 가치’는 그 생명체(유정체)의 ‘정신 상태’에 달려 있습니다. 어떤 삶도 동일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동물의 삶을 인간의 삶과 비교할 수 없는 이유입니다. 동물들 사이에도 엄청난 차이가 있으며, 고릴라나 개가 벌레보다 ‘더 지각력’이 있다는 것을 우리는 쉽게 알 수 있습니다.

  • * 그러나, 우리 모두는 낮은(천한) 벌레로 태어난 적이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따라서 차이가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하지만, 의도적으로(불필요하게) 어떤 지각 있는 존재(유정체)의 생명을 빼앗아서는 안 됩니다.

 

6. 자신의 행위에 의해 영향을 받는 유정체의 지위(정신 상태)를 ‘자신이 어떻게 알겠는가’라는 문제에 관해서는, 자연(자연법)이 안다는 것입니다.

 

  • * “우리는 모두 상호 연결되어 있다”라는 이 점은 이제 양자 역학에 의해 입증되었습니다. ‘양자 얽힘 ㅡ 우리는 모두 연결되어 있다’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 * 이것은 깜마-/위빠-까(kammā/vipāka)을 이해하는 핵심 요소이며, 필자의 다음 프로젝트입니다. 필자는 양자 역학이 이것을 더 깊은 수준에서 보여줄 수 있다고 믿습니다.

 

7. 띠삐따까(Tipiṭaka)에 있는 몇 가지 두드러진 예를 살펴보겠습니다.

 

  • * 고행자 싯다르타가 6년 동안 고군분투하고 그런 어려움을 겪어(고생을 하여) [고따마] 부처님이 된 것은 전생에 깟사빠 부처님(Buddha Kassapa)에게 모욕적인 말을 했기 때문이라고 [띠삐따까에] 분명히 나와 있습니다. 그 당시 싯다르타는 조띠빨라(Jotipala)라는 이름의 부유한 사람이었고, 가띠까라(Gatikara)라는 친구가 있었는데, 그 가띠까라는 깟사빠 부처님의 법문을 듣고 아나-가미(Anāgāmi)가 되었습니다. 가띠까라는 조띠빨라에게 깟사빠 부처님의 가르침을 들으러 가자고 설득했지만, 조띠빨라는 “나는 가서 대머리 승려의 말을 듣고 싶지 않다”라고 말하며 계속 거절했습니다.

  • * 그것이 고행자 싯다르타가 부처님이 되기 전에 그런 고난을 겪도록 강제시킨 깜마-(kammā)였습니다. 이것은 상응하는 깜마 위빠-까(kammā vipāka)를 축적하기 위해 부처님을 모욕하고 있다는 것을 자신이 알 필요가 없다[자신이 알든 모르든 그에 따른 깜마 위빠-까가 생긴다]는 매우 분명한 예입니다.

  • * 실제로, 부처님이 된 후에도 고따마 부처님에게 악영향을 끼친 그런 깜마- 위빠-까(kammā vipāka)가 11가지 더 있습니다. 그 중 3가지는 빳쩨까 붓다(Pacceka Buddha)에게 행한 악업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특히 그런 빳쩨까 붓다를 [우리가] 알기는 불가능합니다. 왜냐하면 (고따마 부처님과 같은) 삼마- 삼붓다(Sammā Sambuddha)가 없을 때(그리고 ‘삼마- 삼붓다’의 가르침이 사라졌을 때)에 빳쩨까 붓다(Pacceka Buddha)들이 나타나며, 빳쩨까 붓다(Pacceka Buddha)들은 다른 이에게 붓다 담마를 가르칠 수 없기 때문입니다.

  • * 그러므로, 잘못된 행위의 대상인 사람(또는 존재)의 상태를 모른다는 것은 작용(적용/고려)되지 않습니다. 이것은 붓다께서 만드신 규칙이 아닙니다. 부처님 자신도 그런 법칙에서 자유롭지 못했습니다. 깜마의 법칙은 중력의 법칙과 마찬가지로 자연 법칙(자연법)입니다. 부처님은 단지 그것들을 발견하셨을 뿐입니다.

 

8. 그래서, 위에서 독자의 질문(의문)이 해결되었기를 바랍니다. 깨달아야 할 또 다른 중요한 사실은 모든 아꾸살라 깜마-(akusala kammā)는 10 가지 오염/번뇌(다사 아꾸살라, dasa akusala) 중 단지 하나 또는 그 이상을 수반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모두입니다. 그리고 깜마- 위빠-까(kammā vipāka)의 심각성(강도)은 ‘피해자의 지위(상태)’에 달려 있으며, 그 지위(상태)를 모른다는 것은 변명이 되지 않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아래에서 좀 더 자세히 다루겠습니다.

 

9. 그러기 위해서, '의도' 부분을 좀 더 유심히 살펴봅시다. 먼저 아꾸살라 깜마-(akusala kammā)를 짓는 것과 관련된 핵심 요소를 살펴보겠습니다.

 

  • * 모든 아꾸살라 깜마-(akusala kammā)는 다사 아꾸살라(dasa akusala) 중의 하나 또는 그 이상을 행하려는 의도에서 비롯됩니다.

  • * 주어진 아꾸살라 깜마-(akusala kammā)에는[행하는 것에는] 여러 단계가 있습니다(각각 다른 수의 단계를 가짐). 예를 들어, 생명을 빼앗는 경우에는 다음과 같은 4단계가 있습니다. 살아있는 존재(유정체)가 있어야 하고, 살아 있음을 알아야 하고, 그 존재를 죽일 의도가 있어야 하고, 죽이기 위해 필요한 계획 및 행위를 하고, [그로 인해] 결국 살아있는 존재(유정체)가 죽게 되었다고 하는 4단계입니다. 필요한 모든 단계가 완료되면, 그것을 깜마- 빠타(kammā patha)라고 합니다.

  • * 완료된 단계의 수가 증가함에 따라, 그 위빠-까(vipāka)의 심각도(강도)가 증가합니다. 모든 것이 완료되어 깜마- 빠타(kammā patha)가 행해졌을 때, 그 깜마- 위빠-까(kammā vipāka)는 가능 한도에서 가장 강력한 것이 됩니다.

 

9-1. 사람을 죽이는 경우를 예로 들어 보겠습니다. 이제 우리는 깜마- 위빠-까(kammā vipāka)의 강도를 평가하기 위해 위 #3에 있는 두 가지 영향/효과를 결합해야 합니다.

 

  • * 문제의 인간은 평범한 사람(범부 중생)일 수도 있고, 성스런 사람(성자), 예를 들어 아라한일 수도 있습니다. 살인자는 피해자가 아라한인지 여부를 알 수 있는 방법은 없습니다. 따라서, 그 결과로 생기는 깜마- 위빠-까(kammā vipāka)는 ‘피해자의 지위(상태)’에 따라 매우 다를 수 있으며 살인자는 범한 죄의 심각성을 모를 수도 있습니다.

  • * 이제, 살인자가 처음 네 단계를 거쳤지만 피해자는 살아남았다고 가정해 보겠습니다. 이제 살인자는 죽일 의도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단지 아라한에게 상처만 입혔기 때문에 아-난따리야 깜마-(ānantariya kammā)에 직면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래도, 깜마- 위빠-까(kammā vipāka)의 강도는 보통 사람을 해치는 것보다 훨씬 더 높을 것입니다.

  • * 깜마 위빠-까(kamma vipāka)는 자연법칙(자연법)에 기초합니다. 그것들의 집행은 자동적입니다. 만유인력은 관련된 사람에 관계없이 작용하는 것처럼, 깜마- 위빠-까(kammā vipāka)도 마찬가지입니다.

 

10. 그러므로, 위의 분석은 주어진 범행(나쁜 행위)에 대한 깜마- 위빠-까(kammā vipāka)의 강도에 대한 개념을 얻기 위해 사용될 수 있습니다. 그것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 ‘의도’는 다사 아꾸살라(dasa akusala) 중의 하나(또는 그 이상)입니다.

  • * 깜마-(kammā)의 무게는 희생자(피해자)의 정신 상태(지위)에 따라 다르며, 깜마-(kammā)를 행하는 사람이 그 희생자(피해자)의 ‘정신 상태(지위)’에 대해 알고 있었는지 여부와는 관계없습니다.

  • * 깜마-(kammā)의 무게는 또한 필요한 단계 중에 실제로 완료한 단계에 따라 달라집니다. 의도가 있는 것만으로는 완전한 효과(영향)가 생기기에 충분하지 않습니다.

 

11. 메커니즘을 더 명확히 하기 위해, 다른 예를 살펴보겠습니다. 사람 X가 밤에 X의 집에서 움직이는 사람을 감지했다고 가정해 보세요. 침입자라고 생각하고 침입자를 죽일 의도로, X는 그 ‘침입자’를 쏘아 죽입니다. 그리고,  X는 그 사람이  자신의 아버지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 * 의도는 죽이는 것( ‘다사 아꾸살라’ 중의 하나)이었으며, 희생자는 X 자신의 아버지로 밝혀졌습니다. 따라서 X가 자신의 아버지를 죽일 의도는 없었다 하더라도,  X는 이제 아-난따리야 깜마-(ānantariya kammā)을 행한 것입니다.

 

12. 또 다른 반전의 예로,  X가 지붕 위에서 수리를 하고 있었는데, 그의 아버지가 지붕 바로 아래 땅바닥에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한 채 지붕에서 무거운 것을 [아래로] 던졌다고 가정해 봅시다. 그리고 아버지는 그것에 맞아서 죽었습니다.

 

  • * 여기서는, 생명체(유정체)를 죽일 의도가 없었습니다. 따라서 그 행위가 그의 아버지를 죽게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아-난따리야 깜마(ānantariya kamma)는 고사하고 아꾸살라 깜마(akusala kamma)조차도 저지르지 않았습니다.

 

13. 이것이 우리가 어떤 경우를 분석할 때 주의(신중)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 * 우리는 어디서든 사람을 만나면, 그 사람을 보는 것만으로 그 사람이 성자인지 아닌지 말할(알) 수 없습니다.

  • * 그러나, 우리는 동물과 인간의 차이를 확실히 알 수 있습니다. 인간의 생명은 동물의 생명보다 훨씬 더 가치가 있습니다. ‘인간 바와(human bhava)’를 얻는 것은 극히 어렵습니다.

  • * 동물들 사이에서도, 명확한(분명한) 지침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일부 동물이 다른 동물보다 ‘더 지각력’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 * 하지만, 예를 들어 걸어다닐 때 발에 짓눌릴 수 있는 곤충(또는 벌레)에 대한 ‘우발적 살생’에 대해 걱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14. 독자의 이메일 코멘트의 또 다른 진술인, “..성자에게 나쁜 행위를 하는 것을 그렇게 훨씬 더 나쁘게 하는 것은 그와 같이 일부 사람들에게 나쁜 행위를 하기 위해서는 매우 비뚤어진(그릇된) 마음 상태가 필요하다는 사실입니다.”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 * 문제는 대부분의 경우에 우리는 주어진(특정) 사람이 소-따빤나(Sōtapanna)인지 아닌지 모른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소-따빤나(Sōtapanna)가 누구(어떤 사람)인지”조차 들어 본 적이 없을 것입니다.

  • * 하지만, 그 결과는 알든 모르든 똑같습니다.

 

15. 다음에서, 필자는 더 깊이 들어가고 싶은 사람들에게 유익하도록 ‘의도’ 문제에 대해 좀 더 깊이 논의하고자 합니다.

 

  • * 부처님께서는 “cetana ham Bhikkave kammaṃ vadami”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따라서 깜마(kamma)의 종류를 결정하는 것은 쩨따나(cetana)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쩨따나 쩨따시까(cetana cetasika)를 주의 깊게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 * 쩨따나(cetana)는 때때로 ‘의도(intention)’로 번역되고 다른 때는 ‘의지(volition)’로 번역됩니다. 그 둘의 차이점을 구별하기는 어렵습니다. 의지(volition)는 ‘더 많은 개인적인 특성’을 포함하는 것으로 보이며, 따라서 더 좋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둘 다 정말로는 쩨따나(cetana)에 대한 올바른 번역이 아닙니다.

  • * 필자가 아래에서 지적하는 바와 같이, 쩨따나(cetana)는 찟따(citta)의 본질(본성)을 결정짓는 쩨따나 쩨따시까(cetana cetasika)가 아니라는 의미에서 의도(intention)가 아닙니다. 쩨따나(cetana)는 작용하는 많은 쩨따시카(cetasika)의 누적 효과를 결합(조합)합니다. 이것이 때때로 빠알리(Pāli) 용어를 그대로 사용하고 그 의미를 이해하는 것이 가장 좋은 이유입니다.

 

16. 필자는 ‘Cetasika (Mental Factors)’에서 쩨따시까(cetasika)를 소개했고 ‘아비담마’ 섹션’의 ‘Citta and Cetasika’ 서브섹션[역자주: 서브섹션 재배열 및 변경되었음]에서 그것들의 일부 측면에 대해 논의했습니다.

 

  • * 따라서 우리가 모든 마음에 ‘무언가를 하려는’ 의도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7가지 보편 쩨따시까(universal cetasika) 중 하나인 쩨따나(cetana)는 각각의 찟따(citta)에 있습니다. ‘Cetasika (Mental Factors)’에서 간략히 나타내 보인 바와 같이, 쩨따나(cetana)는 ‘관련된 쩨따시까(cetasika)를 주어진 찟따(citta)에 모아 합치는(조합하는)’ 쩨따시까(cetasika)입니다. 이것은 또한 ‘찟따와 쩨따시까 ㅡ 윈냐-나가 일어나는 방법’에서 논의되었습니다.

  • * ‘의도(intention)’는 아꾸살라 깜마-(akusala kammā)의 경우에 다사 아꾸살라(dasa akusala) 중의 하나입니다. 그 의도는 어떤 쩨따시까(cetasika) 세트(집합)가 지배적인 사람의 가띠(gati) 때문에 일어납니다.

  • * 아꾸살라 깜마-(akusala kammā)의 경우에, 모하(moha, 무지), 및 3가지 다른 쩨따시까(cetasika)인 아히리까(ahirika, 부끄러움 없음), 아놋따빠(anottapa, 잘못에 대한 두려움 없음), 웃닷짜(uddhacca, 안절부절 못함 또는 동요)는 모든 아꾸살라 찟따(akusala citta)에 대한 ‘네 가지 보편(공통) 요소’이기 때문에 항상 거기에 있습니다.

  • * 그러나 로바(lobha), 딧티(diṭṭhi), 위찌낏짜(vicikicca) 등과 같은 다른 ‘아꾸살라 쩨따시까(akusala cetasika)’가 나타나는 것은 상황과 그 행위를 저지르는 사람에 따라 다릅니다. ‘쩨따시까 ㅡ 가띠에 관련’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예를 들어, 한 사람은 탐욕(lobha, 로바) 때문에 거짓말을 하고, 다른 사람은 증오(dosa, 도사) 때문에 동일한 거짓말을 할 수 있습니다. 그 결과는 후자에게 더 나쁩니다.

  • * 의도(intention)는 다사 아꾸살라(dasa akusala) 중 하나(또는 그 이상)를 저지르는 것입니다. 따라서 쩨따나(cetana)는 그 자체로 ‘의도(intention)’가 아니고, 더 깊은 의미가 있습니다. 그것은 또한 그 결심(결정)이 어떻게 생겨났는지에 달려 있습니다. 붓다께서 “cetana ham Bhikkave kammaṃ vadami”라고 말씀하셨을 때, 그것이 붓다께서 의미하신 바입니다. 그 특정한 의도가 어떻게 생겨났는가는 관련된 나쁜 쩨따시까(cetasika)의 세트(집합)에 달려 있습니다.

  • * 꾸살라 깜마-(kusala kammā)의 경우도 같은 방식으로 작용합니다. 여기서 ‘의도(intention)’는 하나 또는 그 이상의 꾸살라 깜마(kusala kamma)를 행하는 것이며, 여기에는 도덕적(소바나, sobhana) 쩨따시까(cetasika)의 세트(집합)가 작용합니다.

 

17. 따라서 우리는 더 깊이 이해하기 위해 계속해서 더 깊이 파고들 수 있습니다. 하지만 모든 세부 사항을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낙담하지 마세요. 필자가 경험으로 아는 바와 같이, 그것에는(깊이 이해하는 데는) 시간이 걸립니다.

 

  • * 개념에 대해 더 많이 생각할수록, 개념을 바라보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것은 혼란으로 이어지지 않고 더 명확해집니다. 이것이 순수한 담마의 힘입니다.

  • * 아비담마에 들어가지 않고도 이 문제에 대해 숙고해야 할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것이 진짜 ‘바와나(bhavana, 수행)’인 것이며, 특히 소-따빤나(Sōtapanna) 단계로 이어지는 것입니다.

 

이 문제는 토론 포럼의 ‘Adding Kamma vs. Receiving Vipaka’ 및 ‘Clarification of definition – “Anantariya”’ 토픽에서 논의되고 있습니다.

{"google":["PT Serif"],"custom":["Nanum Gothic","Noto Sans KR","Nanum Barun Gothic"]}{"google":["PT Serif"],"custom":["Nanum Gothic","Noto Sans KR","Nanum Barun Gothic"]}
{"google":["Noto Sans KR"],"custom":["Nanum Gothi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