퓨어 담마(Pure Dhamma)

붓다의 진정한 가르침을 회복하기 위한 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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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제(세-와나) - 사견의 근본 원인


원문 : Key Dhamma Concepts 섹션의 ‘Associations (Sēvana)- A Root Cause of Wrong Views’ 포스트

2019년 6월 29일; 2019년 7월 1일 개정(마지막에 코멘트 추가)


1. 우리의 세계관은 먼저 우리 가족에 의해 형성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평생 동안 그 견해를 유지합니다. 좋은 예는 종교입니다.


  • * 인터넷의 출현과 함께 이것은 변화하고 있습니다. 이제 사람들은 많은 세계관에 노출되어 있으며 다른 세계관에 대해 배우고 어느 것이 더 이치에 맞는지 스스로 결정할 수 있습니다.

  • * 그래도 어린 나이에 심어진 기본 심적 경향(사고 방식 또는 마음 가짐)은 오랫 동안 지속되는 영향을 끼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아이들이 ‘나쁜 영향’, 특히 나쁜 친구들에 노출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2. 붓다께서 사용하신 용어에서, 각자의 ‘가띠(gati, 습관, 성격 특질)’는 각자의 세계관에 의해 결정되며, 그 반대도 마찬가지입니다. 또한, 어떤 시점에서 아윗자-(avijjā, 어리석음)로 행동할지 여부는 각자의 가띠(gati)에 달려 있습니다. 간단히 말하면, 좋은 가띠(good gati)는 삼마 딧티(Samma Ditthi, 바른 견해)와 연관되어 있고, 나쁜 가띠(bad gati)는 밋차- 딧티(micchā ditthi, 그릇된 견해)와 연관되어 있습니다.



3. 가띠(gati)는 한 생에서 다음 생(또는 미래 생)으로 옮겨집니다. 하지만, 가띠(gati)는 주로 인간 생애 중에 형성됩니다.


  • * 사람이 ‘동물 가띠(gati)’를 기른다면, 그 사람은 다음 생(미래 생)에 그 동물로 태어나기 쉽습니다. 이것은 ‘꾹꾸라와띠까 숫따( Kukku­ra­vatika Sutta, MN 57 )’(영어 번역은  ‘The Dog-Duty Ascetic (MN 57)’ 참조)에 명확히 설명되어 있습니다. 거기서 붓다께서는 세니야(Seniya)가 기르고 있는 그 ‘개 가띠(dog gati)’가 어떻게 그를 개로 태어나게 이끄는지를 설명하십니다.

  • * 마찬가지로, 선하고 도덕적인 상카라(sankhāra), 즉 뿐나비상카-라(punnabhisankhāra)를 함양함으로써 ‘데와 가띠(deva gati)’를 기르는 사람, 그리고 그런 생각과 말과 행동에 몰두하는 그 사람은 데와(deva, 천신)으로 태어날 가능성이 있습니다.

  • * 사람은 과거 생에 인간으로서 획득한 특정 집합의 가띠(gati)로 태어납니다. 그러나 인간은 다른 유형의 상카-라(sankhāra)를 자발적으로 기꺼이 함양함으로써 그 가띠(gati)를 바꿀 수 있고, 그래서 자신의 행동을 바꿀 수 있습니다. 특히, 사람은 출세간적(성스런) 팔정도를 육성하여(뿐나비상카-라를 기르고 띨락카나를 이해함을 의미함), 아리야 가띠(Ariya gati)를 기를 수 있습니다.


4. 사람으로 태어난 아기는 그 부모와 비슷한 가띠(gati)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일반적으로 부모와 비슷한 가띠(gati)를 가진 간답바가 어머니와 아버지의 교합에 의해 어머니의 자궁에 형성된 접합체(수정란)에 입태할 수 있습니다. ‘Buddhist Explanations of Conception, Abortion, and Contraception’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 * 이것이 아이가 부모의 가띠(그래서, 세계관, 종교, 행동 패턴)를 유지할 가능성이 있는 또 다른 이유입니다.

  • * 그러나, 아이가 나쁜 친구들의 영향을 강하게 많이 받으면 그 가띠(gati)는 더 나빠질 수 있습니다. 빠띳자 사뭅빠-다(Paticca Samuppāda, 연기)에 대한 논의에서 마약 중독자/갱 맴버로 바뀌는 십대의 예를 언급했습니다. ‘Phassa paccayā Vēdanā….to Bhava’ 를 참조하세요.

  • * 같은 방식으로, 그 십대가 예를 들어 부모 자신이 고귀한 길(팔정도)을 따르기 시작했고, 십대에게도 그렇게 하도록 격려한다면 올바른 방향으로 지향될 수 있습니다.

  • * 따라서, 자신의 환경(자신이 교제하는 사람)이 자신의 가띠(gati)에 큰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이것은 어른들에게도 진실이지만, 아이들은 쉽게 영향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반드시 ‘선하고 도덕적 가띠”를 가진 사람들과 어울려야 합니다.


5. ‘망갈라 숫다( Mangala Sutta, Snp 2.4 )’에서, 천신이 붓다께 와서, ‘길러야  할 가장 큰 상서로운 행위는 무엇인지’(‘brūhi ­maṅga­la­muttamaṃ’) 물었습니다. 여기서, ‘망갈라뭇따망(maṅga­la­muttamaṃ)’은 ‘망갈랑(mangalam) + 웃따망(uttamam)’으로 합성된 낱말이며, ‘망갈라(mangala)’는 ‘상서로운’의 의미이고, ‘웃따마(uttama)’는 ‘가장 높은’을 의미합니다.


  • * 붓다께서 열거하신 맨 처음 상서로운 행위는 “아세-와나 짜 바-알라-낭, 빤디따-난짜 세-와나..(Asēvana ca bālānaṃ, paṇḍitānañca sēvana..)”, 즉 “어리석은 사람(바-알라, bāla)과 어울리지(교제하지) 않고, 현명한 사람(빤디따, paṇḍita)와 어울리는(교제하는) 것”입니다.

  • * 위에서 필자는 ‘세-와나(sēvana)’를 ‘교제(어울림)’로, ‘아세-와나(asēvana)’를 ‘교제하지 않음’으로 번역했습니다. 더 나은 설명은 ‘조언을 받고 따름’과 ‘조언을 받지 않고 따르지 않음’입니다. 때로는 그 사람들의 품성이 나쁘더라도 그러한 그룹의 사람들과 ‘관계’를 끊을 수 없는 경우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그러한 사람들은 직장에 있을 수 있으며 그들과 교류하는 것을 멈출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나쁜 의견이나 세계관에 따를 필요는 없습니다.

  • * 이와 마찬가지로, ‘빤디따-난짜 세와나-(paṇḍitānañca sēvana)’는 반드시 ‘아리야(성자)와 어울리는 것’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예를 들어, 부처님과 가깝게 지낸 사람들이 많이 있었지만(데와닷따와 꼬살라 왕 등), 그들은 그 관계로 [깨달음의] 이득을 얻지 못했습니다. 데와닷따는 지옥에 태어났고, 꼬살라 왕은 소따빤나가 되지 못했습니다.


6. 물론 밋차- 딧티(micchā ditthi)를 가진 사람들과 상호 교류를 최소화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맥락(배경 상황)에 달려 있습니다.


  • * 예를 들어, 많은 저명한 과학자들은 ‘자신이 가진 것은 육체가 모두이고 육체의 죽음과 함께 삶이 끝난다’고 하는 웃체-다 딧티(ucchēda ditthi, 단견)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은 삭까-야 딧티(sakkāya ditthi)(수다원 단계에 이르는 것을 막는 견해)와 관련된 두 가지 주 사견 중의 하나입니다. ‘삭까-야 딧티 - 더 깊은 사견의 제거’ 포스트를 보세요.

  • * 그들(과학자들)의 말을 듣고 그들에게서 과학과 같은 세간적인 것에 대해 배우는 것도 좋습니다. 그들 대부분은 진정한 붓다 담마(Buddha Dhamma)를 접한 적이 없었으며 모두 ‘도덕적인 사람들’입니다. 포럼의 토론 토픽 ‘Sakkāya Ditthi and Tilakkhana’에서 최근 좋은 예(2019년 6월 27일 오전 9시 48분 포스트)를 다루었습니다. 거기서 설명했듯이, 제임스 투어 박사(Dr. James Tour)는 왜 삶에 단지 육체적인 것 이상이 있는지 설명한 것은 정확합니다. 또한, 그는 왜 생명체가 ‘불활성 물질’에서 진화할 수 없는지 명확한 증거로 설명합니다.

  • * 그러나, 그는 분명히 붓다 담마(Buddha Dhamma)를 접하지 못했기 때문에, 절대신에 의해 생명체가 창조되어야 하고 영원한 ‘영혼’이 있다고 말하는 것 외에는 좋은 설명을 생각할 수 없습니다. 즉, 그는 ‘삿사따 딧티(sassata ditthi, 상견)’를 가지고 있습니다. 필자는 그를 비난하지 않습니다. 그는 그것을 굳게 믿고 그것이 바르다고 하므로, [그에게] 삶은 매우 복잡하며 진화론으로 생명(삶)의 기원을 설명하는 것이 가능하지 않습니다.

  • * 그가 접하지 못한 것은 삶은 항상 존재하고(생명의 시작을 추적해서 알 수 없음) 원인과 조건(빠띳짜 사뭅빠-다, 연기)에 따라 진화한다고 하는 부처님의 설명입니다. ‘Buddhism and Evolution – Aggañña Sutta (DN 27)’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7. 닙바-나의 소-따빤나(수다원) 단계를 달성하기 위해 충족되어야 하는 4가지 조건 중 ‘삽뿌리사삼세오(Sap­purisa­saṃ­sevo)’, 즉 삽뿌리사(sappurisa)와의 연계가 첫 번째 조건입니다. 삽뿌리사(sappurisa)는 ‘사트(sath)’ + ‘뿌리사(purisa)’의 합성어로서, 성자(Ariya)를 의미합니다. ‘Four Conditions for Attaining Sōtapanna Magga/Phala’ 포스트를 보세요.


  • * 붓다 담마는 독특하기 때문에, 진정한 메시지는 위의 링크 포스트에서 설명된 바와 같이 붓다(Buddha)나 붓다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는 자(진정한 제자, 성자)로부터 나와야 합니다. 이 가르침은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던 독특한 가르침( ‘붑베 아나눗수떼수 담메수.., pubbe ananussutesu dhammesu..’)을 ‘파악한’ 성자에 의해서만 정확히 설명될 수 있습니다. ( ‘Dhammacakkappavattana Sutta – Introduction’ 중 8번을 참조하세요.)

  • * 그러나 아리야(성자)와 어울리거나 직접 관련될 필요는 없습니다. 핵심은 위에서 설명된 바와 같이, 그런 성자들로부터 조언을 받고 따르는 것입니다. 그것은 그들의 데사나(desana, 법문)를 듣고 그리고/또는 그들의 글을 읽음으로써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 * 삭까-야 딧티(sakkāya ditthi), 즉 웃체-다 딧티(ucchēda ditthi, 단견) 또는 삿사따 딧티(sassata ditthi) 또는 이 둘의 어떤 조합이 있는 동안에는 소-따빤나(Sōtapanna) 단계에 도달할 수 없습니다. ‘삭까-야 딧티 - 더 깊은 사견의 제거’를 보세요.


8. 이제 ‘삽뿌리사(sappurisa)’라는 용어를 보다 자세히 살펴보면 전체 상황에 대해 더 나은 그림을 얻을 수 있습니다. 삽뿌리사(sappurisa) / 아삽뿌리사(asappurisa)를 다른 식으로 설명하는 많은 숫따(sutta)가 있습니다(모두 서로 관련됨).


  • * 여기 논의를 위해 ‘앗탕기까 숫따( Aṭṭhaṅ­gika Sutta, AN 4.205 )’에 나와있는 설명이 더 적절합니다. “까따모 짜, 빅카웨, 아삽뿌리소? 이다, 빅카웨, 에깍꼬 밋차-딧티꼬 호띠, 밋차-상깝뽀 호띠, 밋차-와-꼬 호띠, 미차-깜만또 호띠, 밋차-아-지-오 호띠, 밋차-와-야-모 호띠, 밋차-사띠 호띠, 밋차-사마-디 호띠, 아양 윳짜띠, 빅카웨, 아삽뿌리소(Katamo ca, bhikkhave, asappuriso? Idha, bhikkhave, ekacco micchādiṭṭhiko hoti, micchāsaṅkappo hoti, micchāvāco hoti, micchākammanto hoti, micchāājīvo hoti, micchāvāyāmo hoti, micchāsati hoti, micchāsamādhi hoti. Ayaṃ vuccati, bhikkhave, asappuriso)”.

  • * 번역: 아삽뿌리사(asappurisa)는 밋차- 딧티(micchā diṭṭhi), 밋차- 상깝빠(micchā saṅkappa), 밋차- 와-짜-(micchā vācā), 밋차- 깜만따(micchā kammanta), 밋차- 아-지-와(micchā ājīva), 밋차- 와-야-마(micchā vāyāma), 밋차- 사띠(micchā sati), 및 밋차- 사마-디(micchā samādhi.)를 따르는 자다.

  • * 다시 말해서, 잘못된 견해(밋차- 딧티, micchā diṭṭhi)를 가진 자는 잘못된 방식으로 생각하고, 잘못된 방식으로 말하고, 잘못된 방식으로 행동하고, 잘못된 생계를 따르고, 잘못된(또는 쓸모없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노력하고, 잘못된 심적 성향(마음 가짐)에 이르고, 동요된 상태에 이르게 됩니다(그래서 현명하지 못한 행동을 하기 쉽습니다).


9. 물론, 삽뿌리사(sappurisa)는 삼마- 딧티(sammā diṭṭhi), 삼마- 상깝빠(sammā saṅkappa)i, 삼마- 와-짜-(sammā vācā), 삼마- 깜만따(sammā kammanta), 삼마- 아-지-와(sammā ājīva), 삼마- 와-야-마(sammā vāyāma), 삼마- 사띠(sammā sati), 및 삼마- 사마-디(sammā samādhi)로 올바른 길에 있는 자입니다.


  • * 또한, 숫따(sutta)는 다른 이들이 잘못된 길을 따라가도록 부추기는 더 나쁜 아삽뿌리사(asappurisa)가 있다고 설명합니다.

  • * 마찬가지로, 다른 이들이 올바른 길을 따르도록 권장하는 더 나은 삽뿌리사(sappurisa)가 있습니다.


10. 아삽뿌리사(asappurisa)의 또 다른 정의가 ‘빠띠빠다- 숫따( Paṭipadā Sutta, SN 22.44 )’에 나와 있는데, 이는 현재 논의에 적절합니다.

삭까-야사무다야가-미닌짜 우오, 빅카웨, 빠띠빠당 데셋사-미, 삭까-야니로다가-미닌짜 빠띠빠당.

(Sakkā­ya­sa­muda­ya­gā­miniñca vo, bhikkhave, paṭipadaṃ desessāmi, sakkā­ya­nirodha­gā­miniñca paṭipadaṃ.)

땅 수나-타. 까따마- 짜, 빅카웨, 삭까-야사무다야가-미니- 빠띠빠다-? 이다, 빅카웨, 앗수따와- 뿌툿자노 아리야-낭 아닷사-위- 아리야담맛사 아꼬위도 아리야담메 아위니-또, 삽뿌리사-낭 아닷사-위 삽뿌리사담맛사 아꼬위도 삽뿌리사담메 아위니-또, 루-빵 앗따또 사마누빳사띠, 루-빠완땅 와- 앗따-낭; 앗따니 와- 루-빵, 루-빠스밍 와- 앗따-낭. 웨다낭 앗따또 … 산냥 … 상카-레 … 윈냐-낭 앗따또 사마누빳사띠, 윈냐-나완땅 와- 앗따-낭; 앗따니 와- 윈냐-낭, 윈냐-나스밍 와- 앗따-낭”.

(Taṃ suṇātha. Katamā ca, bhikkhave, sakkā­ya­sa­muda­ya­gāminī paṭipadā? Idha, bhikkhave, assutavā puthujjano ariyānaṃ adassāvī ariyadhammassa akovido ariyadhamme avinīto, sappurisānaṃ adassāvī sap­purisa­dhammassa akovido sap­purisa­dhamme avinīto, rūpaṃ attato samanupassati, rūpavantaṃ vā attānaṃ; attani vā rūpaṃ, rūpasmiṃ vā attānaṃ. Vedanaṃ attato … saññaṃ … saṅkhāre … viññāṇaṃ attato samanupassati, viññāṇavantaṃ vā attānaṃ; attani vā viññāṇaṃ, viññāṇasmiṃ vā attānaṃ”.)


번역: “빅쿠들이여, 삭까-야(딧티)가 일어나는 길로 이끄는 길과 삭까-야(딧티)가 그치는 길로 이끄는 길을 가르치겠다. ~ ”.  뒷 부분의 굵은 글씨로 된 설명은 ‘삭까-야 딧티(유신견)와 띨락카나(삼법인)’ 포스트의 2번에 논의된 것과 정확하게 일치합니다.


  • * 숫따(sutta)의 다음 구절에서는 삽뿌리사(sappurisa)가 ‘삭까-야 딧티(sakkā­ya ditthi)를 제거한 자’라고 하십니다.


11. 더 적절한 두 가지 용어는 ‘수따와- 아리야사-와꼬(sutavā ariyasāvako, 붓다 담마를 이해한 성자)’와 ‘앗수따와- 뿌툿자노(assutavā puthujjano, 붓다 담마를 듣지 못하거나 이해하지 못한 자)’입니다.


  • * ‘아-난닷테라 숫따( Ānandat­thera Sutta, SN 55.13 )’에서는 ‘수따와 아리야사-와꼬(sutava ariyasāvako)’를 ‘붓데 아웩깹빠사-데나 사만나-가또(buddhe aveccap­pasā­dena samannāgato)’, ‘담메 아웩깹빠사-데나 사마나-가또(dhamme aveccap­pasā­dena samannāgato)’, ‘상게 아웩깹빠사-네나 사마나-가또(sanghe aveccap­pasā­dena samannāgato)’, ‘아리야깐떼히 실레히 사만나-가또(ariyakantehi sīlehi samannāgato)’를 지닌 자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붓다, 담마, 상가에 대한 깨질 수 없는 믿음과, 아빠-야가-미(apāyagāmi, 악처로 향하는) 행위를 하지 않는 깨지지 않는 도덕적 심적 성향(마음 가짐, 사고 방식)’을 가진 자를 의미합니다.

  • * 그것들은 실제로 소-따빤나(Sōtapanna)의 4가지 특질입니다. ‘Sotapatti Anga – The Four Qualities of a Sōtapanna’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아웩깹빠사-데나( aveccap­pasā­dena )’와 ‘아리야까-안따 시-일라( ariyakānta sīla )‘라는 핵심 용어는 그 포스트에서 논의됩니다.

  • * 덧붙여 말하면, 이러한 용어를 다른(그러나 관련이 있는) 방식으로 설명하는 숫따(sutta)가 많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두띠야아리야사-와까 숫따( Dutiya­ari­yasāva­ka Sutta, SN 12.50 )’에서는 빠띳짜 사뭅빠-다(Paticca Samuppāda, 연기)를 이해한 자로 ‘수따와 아리야사-와꼬( sutava ariyasāvako )’를 설명합니다.

  • * 따라서, ‘수따와 아리야사-와꼬( sutava ariyasāvako )’는 아리야(Ariya, 성자)입니다.

  • * 반면에, ‘앗수따와- 뿌툿자노(assutavā puthujjano)’는 그것들(붓다 담마)을 듣지 못하거나 이해하지 못한 자입니다.


12. 그러므로, 세간 기준(mundane standard)으로 매우 도덕적이라고 여겨질 수 있는 사람(유명한 자선가, 과학자 등) 조차도 ‘아삽뿌리사(asappurisa)’ 또는 ‘앗수따와- 뿌툿자노(assutavā puthujjano)’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것은 그들이 밋차- 딧티(micchā ditthi, 사견), 즉 삭까-야 딧티(sakkāya ditthi, 유신견)를 포함하는 10가지의 밋차- 딧티(micchā ditthi)를 가지고 있는 경우입니다. 우리가 논의 했듯이, 삭까-야 딧티(sakkāya ditthi, 유신견)는 웃체-다 딧티(ucchēda ditthi, 단견) 또는 삿사따 딧티(sassata ditthi, 상견) 또는 이 둘의 조합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고귀한(성스런) 팔정도를 따라갈 수 없습니다.


  • * 덧붙여 말하면, 그것은 그들로부터 다른 유용한 (세간적인) 개념을 배울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 * 그러나, 마약 복용, 과도한 음주, 성적 비행 등과 같은 부도덕한 행위에 관여하는 사람들을 정말로 피할 필요가 있습니다.

  • * 고귀한(성스런) 길에서 진전을 이루기 위해서는 붓다 담마(Buddha Dhamma)의 맥락에서 빤디따(pandita, 지혜로운 사람), 즉, 삽뿌리사(sappurisa) / 수따와- 아리야사-와까( sutavā ariyasāvaka )와 교제해야(따르고 조언을 받아야) 합니다. 빤디따(pandita, 지혜로운 사람)는 나이, 교육 정도, 또는 다른 지표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삭까-야 딧티(sakkāya ditthi, 유신견)을 제거했는지의 여부에 따라 결정됩니다. 


2019년 7월 1일: 위 5번과 관련하여, 아-세-와나(āsēvana)는 아세-와나(asēvana)와 다르다는 것에 주목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 * 세-와나(sēvana)는 ‘교제(어울림)’입니다. 아-세-와나(āsēvana, ā + sēvana)는 ‘~와 교제하게 됨’입니다. 이에 대해서는 ‘Āsēvana and Aññamañña Paccayā’ 를 참조하세요.

  • * 아세-와나(asēvana, a + sēvana)는 ‘~와 교제하지 않음’이며, 위 5번에서 논의된 바와 같이 ‘부정’을 나타냅니다.


그 차이를 보는 것은 매우 중요한데, 이것은 빠알리(Pāli) 낱말이 어떻게 결합하여(sandhi) 매우 다른 의미를 가진 다른 낱말들을 만들어내는지 보여줍니다. 오늘 포럼의 토론에서 우리들이 주목해야 할 이 차이를 다루게 해주신 토비아스 그로쎄(Tobias Große) 님에게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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